버클리에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나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해는 1960년이었으므로, 내가 아직 미국식 생활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인도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갔습니다. 올스턴 가와 밀바아 가가 만나는 사거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생활의 속도가 더 느리던 시절에 세워진 수수한 옛 건물에 다가가면서 보니까 자동차들이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은 널따란 화강암 계단을 쏜살같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서는 불만과 분노가 팽배해 있고 더러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아무리 혼잡해도 소포는 부쳐야 했던 나는 긴 줄에 서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느 상황을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일상의 자잘한 볼거리를 좋아하는데, 통찰과 영감을 얻기 위해 구태여 비범한 상황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는, 뜻하지 않게 모든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압박감에 몰아 넣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그 광경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을 것입니다. 내 앞에 선 사람은 마치 스카이 콩콩 놀이라도 하는 듯이 연방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워낙 달아 있어서 어떻게든 끓어오른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사람들이 앞뒤에서 압박하고 있으니 방출하는 방향은 위쪽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습니다. 내 뒤에 선 신사도 마음이 급했고, 그래서 내 목에 뜨거운 숨을 쏟아냄으로써 끓어오른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란 원래 호의를 표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뒤에 선 사람에게 말했지요.


“제 자리에 서세요. 전 급하지 않습니다.”


온통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가 뚱하게 되묻더군요.


“뭐라고요?”


내가 다시 말했지요.


“제 자리에 서세요. 저는 여유가 있습니다. 전혀 급하지 않아요.”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긴장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곧 주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처럼 다급하게 군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중 주차한 사실을 들먹였습니다. 나는 ‘왜 이중 주차를 했습니까?’하고 묻고 싶었으나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줄이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창구의 아가씨는 아마 크리스마스 휴가로 자리를 비운 직원 대신 나온 대학생인 듯했는데 우표를 잘못 주고 거스름돈을 잘못 내주는 등 자꾸 실수를 했고, 사람들은 불평을 하며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당황하고, 당황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고, 그만큼 일처리 시간이 길어지더군요. 이 모두가 사람들이 너무 서두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광경에 혹 크리스마스다운 활기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빠르게 증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창구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도에서 온 사람이에요. 천천히 하세요.”


그녀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미소를 짓고 긴장을 풀었습니다. 내게는 거스름돈을 제대로 내주고 우표도 제대로 주더군요.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내 뒤에 섰던 사람이 그녀의 미소에 미소를 응대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체국 전체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줄 맨 뒤에서는 웃음의 물결까지 일었습니다. 압력은 전염성이 있지만 호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만 마음을 늦추어도, 한 사람만 다른 사람들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글 출처 :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에크낫 이스워런 글 : 도서출판 바움)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