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온지라, 아침부터 졸리고 짜증이 났다.


출근길 전철에 올랐을 때 그날따라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손잡이를 잡고 서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혼잡함에 익숙해질 무렵 환승역에 다다랐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나는 곧 밀려오는 잠 때문에 자꾸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며 졸았다.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세 정거장 정도가 지났을까?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내 잠을 단숨에 빼앗아간 외침.

 

“여러분, 잠깐만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세수를 며칠 동안 못했는지 단정치 못한 외양의 아저씨가 통로 중앙에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순간, 나처럼 잠에서 깨어나 짜증이 난 얼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 등 각색의 시선이 아저씨한테 모아졌다. 아저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제겐 네 살짜리 딸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거기까지 말하자 승객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로군, 얼마나 돈이 아쉬웠으면 딸까지 팔며 저럴까?’ 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대부분의 승객들도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는 일전에 어느 책에선가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해 주면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지하철에 타고 계신 여러분도 부디 제 딸이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딸의 이름은 송희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다음 칸으로 건너가는 게 아닌가.
그때 나는 보았다. 하나 둘 조용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이는 승객들을…….

 

글 출처 :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미상 : [주]자음과 모음) 中에서..

 


배경음악 : Cabo Verde N'ot Era / Maria de Bar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