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꽃잎을 누군가 밟고 지나갔습니다. 발에 밟혀 짓이겨진 꽃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뭉개진 듯 아픕니다. 지는 꽃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피는 꽃이었습니다. 우리가 몰려가 탄성을 지르고 그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뻐하던 꽃입니다. 떨어진 꽃을 손에 들고 가만히 입김을 불어넣어 봅니다.

 

   비 내리는 봄밤에 산방으로 오다가 냇가를 기어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개구리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불빛 속에서 펄쩍펄쩍 뛰어 길을 건너는 개구리들을 차로 치지 않으려고 핸들을 좌우로 틀거나 연신 브레이크를 밟으며 길을 갑니다. 그래도 혹시 내가 깔아and개고 간 개구리가 있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산이 인접한 도로를 지날 때에는 다람쥐나 족제비나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고라니가 차에 치어 죽어 있을 때도 있고 개들이 죽어 있는 날도 있습니다. 으스러진 몸 위로 수없이 지나가는 차바퀴에 몸이 조각나 흩어지는 짐승들을 볼 때마다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개구리, 다람쥐, 나비 한 마리도 해치고 나면 마음이 아픈 법인데, 사람의 목숨을 잔혹하게 해치는 일이 이 시대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어 가슴 미어집니다. 그곳도 어린아이나 힘없는여성들을 끔찍하게 해치는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어 마음 무겁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생각하면 죄스럽기까지 합니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너무 끔찍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과 증오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죄 없이 죽어간 어린 영혼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안고 구천을 떠돌고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의 부모와 가족이 받은 상처와 고통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씻어지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도 다 젖어 있습니다. 꽃 한 송이가 발에 밟혀 뭉개진 것을 보아도 가슴 아픈데, 어린 육신을 저토록 참혹하게 해치는 이가 있었으니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겠습니까.

 

글 출처 : 산방일기(도종환 : 좋은생각사람들) 中에서..

 


배경음악 :Autumn Song / Tchaikov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