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계절의 연서 / 정기모 흰 바람벽에 머물다 떠나는 얇아진 빈 계절의 연서는 풀물 머금은 그리움으로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들국화 향기도 마른 잎의 향기도 붉게 내려서는 노을빛도 모두 품어 안고 흐르다 적막함이 일어서는 깊어진 밤으로 걷다가 비로소 풀어지는 빛 푸른 강물이 되리니 다시, 흰 바람벽에 빈 계절의 연서가 새어 나가고 물푸레나무보다 더 푸른 문장들이 곱게 새겨지면 촛불의 목마름보다 더 깊은 기도 같은 고요의 깊이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