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마와 팬티의 역설 ♥ 

 
-늑대 새끼는 결국 늑대가 된다
-까마귀는 씻어도 희게 되지 않는다
-아름답게 꾸며도 촌사람은 촌사람이다
-양을 치던 사람은 신사가 돼도 양 냄새를 풍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영국 속담들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열자(列子, BC400년 경)는 본성을 색(色)과 식(食)으로 규정하고, 
본성에 따르면 만물에 거역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에덴동산에서 나체로 살던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 사과를 먹은 뒤부터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게 됐다는 신화가 있지요.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기록에 남은 인간사에는 식욕과 육욕의 절제를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본성인 리비도(libido)가 없어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숨기고 있거나 변질된 모습으로 몸속에 침전시켜 몸서리를 치고 있는 정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한 양의 탈을 쓰고도 피를 튀기는 ‘밥그릇 싸움’과 사랑을 빙자한 ‘불륜’이 끊이질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시·소설 같은 문학과 가요 등 음악, 회화, 조각의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상열지사(相悅之事)가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상하고 영적인 본성보다 동물적 야만적인 본능에 더 관심과 애착을 갖기 때문일까요? 
내놓고 스스로 자행하지 못하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자아를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미투(#Me Too) 회오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인간 본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시들이 눈에 띄어 옮겨 봅니다. 
이웃한 남도 출신 시인 문정희(文貞姬,1947~,전남 보성)의 <치마>와 임보(林步,1940~,전남 순천)의 <팬티>입니다.

# <치마>/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팬티>/임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 한다

그러나 -,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랴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토록 절제된 시어(詩語) 속에 그토록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을 담을 수도 있구나! 
시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상상 동경 열망 욕정 욕망과 열락(悅樂)을 오롯이 담은 색정(色情)의 유리그릇을 
엿보는 기분입니다. 
보리로 담근 술은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는 우리 속담도 허튼소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합니다.
<팬티>시인 임보는 최근 <미투(美鬪)>를 발표했습니다. 
곪아 터지는 성폭행 갑질에 열화같이 반발 고발하는 ‘운동’의 역작용(저출산 같은)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美鬪>/임보
진달래가 벌에게 당했다고 하니
민들레도 나비에게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매화 산수유 복숭아 살구 자두들이
떼를 지어 “나두! 나두! 나두!”
아우성을 쳤다

드디어 벌과 나비들은 얼굴을 싸쥐고
은둔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해
과일나무들은 열매를 못 달고
세상은 깊은 흉년에 빠졌다

건강을 빌미로 담배를 집 밖으로 내몰고, 도덕을 앞세워 성(性)은 집 안에 가두려는 세태. 
한 발 더 나아가 벌금이나 옥살이라는 철퇴를 내리치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정쩡하기만 합니다. 
<옳거니>를 쓴 정성수(丁成秀, 1945~)시인의 고뇌처럼.

치마를 올릴 것인지
바지를 내릴 것인지
이것이 문제로다…(후략)

봄이 왔다지만 봄 같지 않은 봄입니다. 
평등·정의·공정·평화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지만, 혼밥 혼술 혼행 같은 아노미(anomie)현상이 미세먼지처럼 번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정희 시인의<치마>와 임보 시인의 <팬티>를 읽고...

# <옳거니>/정성수
치마를 올릴 것인지?
바지를 내릴 것인지?
이것이 문제로다
그렇다
세상의 빨래줄에서 바람에게 부대끼며 말라가는 것 또한
삼각 아니면 사각이다.

삼각속에는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이 있고"
사각속에는 "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가 있다고"
문정희와 임보가 음풍농월 주거니 받거니 진검 승부를 펼친다

옳거니
방패 없는 창이 어디 있고
창 없는 방패가 무슨 소용이리

치마와 바지가 만나 밤은 뜨겁고 세상은 환한 것을...

참고 : 문정희와 임보의 시에서 차용               -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