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쓸 만해 지는 사람 / 한명석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느니.”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중에서-

속담에 ‘늙은 쥐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열정보다는 체험에서 오는 연륜이 웃길이라는 얘기일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인생을 꿰뚫는 사람은 천재이지만, 보통 사람도 나이가 들면 약간의 지혜가 생기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기위해 오랜 준비를 거쳐야 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게 되면, 20대 후반에 이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 키우며 아파트라도 마련하게 되면 보통 마흔입니다. “제기랄, 벌써 마흔이야” 놀라서 부르짖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됩니다. 언젠가 좀 더 충만한 시간이 있으려니 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책읽기도 싫어지던 오후의 도서관, 한없이 예쁘지만 때로 도망치고 싶던 아이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싶은 끝없는 일상, TV 폐인이 되어버릴 것같은 무력감... 모두가 그 자체로 삶이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처음 살아보는 것이었지요. 다소의 실수는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감히 마흔까지의 삶을 ‘첫번 째 인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열정과 시행착오가 뒤엉킨 시간들, 너무 서툴러서 얼굴이 붉어지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간들. 이제 나는 생의 오후에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햇살은 뜨겁지 않아요. 하지만 해가 지려면 멀었습니다. 너무 따가워서 앞을 볼 수 없던 정오의 햇살이 사라지니, 오히려 가시거리가 길어졌어요. 음전하게 가라앉은 햇살이 안정감있고, 그냥 푸르기만 하던 나뭇잎들에 음영과 표정이 드리워져, 저마다의 빛깔을 띠게 되었습니다.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행히도 평균수명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또 한 번의 삶을 살아도 좋을 시간이 확보된거지요. 콘베이어 벨트에서 규격화된 삶을 양산하던 산업화시대가 지나고, 창조적인 응용력이 대우받는 지식중심사회가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막 중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첫 번째 고령층이지요. 최근 7080 가요의 리메이크 붐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중년층의 시장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정쩡하게 낀세대가 아닌 신인류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은 세대입니다. ‘첫번 째 인생’에서 깨달은 것들을 가지고 ‘두번 째 인생’을 살 요건이 갖추어진 세대입니다. 봄과 여름의 아름다움은 결코 가을의 우아함을 따르지 못합니다. 가을의 자신감과 유연함은 가을이 되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이제 나를 압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압니다. ‘두 번 째 인생’에서는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할 것입니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출처 : 구본형변화연구소 메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