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處容)은 말한다 - 신석초 / 낭송 - 이경화^

바람아, 휘젓는 정자나무에 뭇 잎이 다 지겄다
성긴 수풀 속에 수런거리는 가랑잎 소리 소슬한 삿가지 흔드는 소리
휘영청 밝은 달은 천지를 뒤덮는데 깊은 설레임이 나를 되살려 놓노라
아아 밤이 나에게 형체를 주고 슬픈 탈 모습에 떠오르는 영혼의
그윽한 부르짖음…….

어찌할까나 무슨 운명의 여신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도 육체에까지
이끌리게 하는가 무슨 목숨의 꽃 한 이파리가 나로 하여금 이다지도 
기찬 형용으로 되살아나게 하는가

저 그리운 연못은 거친 갈대 우거져서 떠도는 바람결에도 몸을 떨며 
체읍을 한다. 굽이 많은 바다다운 푸른 물 거울은 나의 뜰이었어라
밤들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에 보니 가랄이 넷이어라

그리운 그대, 꽃 같은 그대 끌어안은 두 팔 안에 꿀처럼 달고
비단처럼 고웁던 그대,
내가 그대를 떠날 때 어리석은 미련을 남기지 않았어라

꽃물진 그대 살갗이 외람한 역신의 손에 이끌릴 때 나는 너그러운 바다 
같은 눈매와 점잖은 맵시로 싱그러운 노래를 부르며 나의 뜰을 내렸노라
나의 뜰, 우리만의 즐거운 그 뜰을

아아 이 무슨 가면이 무슨 공허한 탈인가 아름다운 것은 멸하여 가고
잊기 어려운 회한의 찌꺼기만  천추에 남는구나 그르친 용의 아들이여
처용(處容) 도(道)도 예절도 어떤 관념규제도 내 맘을 
편안히 하지는 못한다
지금 빈 달빛을 안고 폐허에 서성이는 나 오오 우스꽝스런 제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