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대’의 두 주인공 심순애와 이수일

‘부벽루 사건’ 이후 그들의 후일담은 과연 어떻게 펼쳐졌을까?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자 이별과 슬픔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대동강 변의 부벽루 아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꽉 찬 달빛을 안고 있다. 여자는 쓰러져 울며 매달리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뿌리치고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검은 학생모를 쓰고 교복을 입은 채 여자한테 구둣발을 내지르는 남자. 하지만 사연 많은 눈물을 삼키며 끝내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가 바로 김중배의 금강석 반지와 심순애의 변심을 경멸하고 저주해 마지않은 이수일이다.


음력 삼월 십사일 밤의 이 광경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 유전된 드문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대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달을 걸고 부르짖은 통한의 맹세가 비단 두 사람의 가슴만 후벼 파고든 것은 아니다. 사랑에 지치고 세상살이가 가파를 때마다 청춘 남녀의 쓰리고 아린 한을 대변하며 오랫동안 한국인의 심금을 울려 왔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 시대에 공유할 수 있는 잔상은 단지 여기까지다. 하지만 후일담의 내막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랜 인연을 저버린 심순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 사라진 이수일은 어디로 갔을까? 달콤한 연애와 사랑의 꿈에서 깨어나 절망과 깊은 원한에 맞닥뜨린 그들은 과연 어떤 길을 걸었을까?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조중환의 번안 소설 《장한몽》을 신문에 연재된 최초의 판본을 저본으로 삼되 그 후에 출간된 여러 단행본과 딱지본 등 확인할 수 있는 모든 판본들을 비교, 검토해 펴낸 ‘결정판’이자 ‘비평적 정본’이다. 본문 뒤에는 상세한 낱말 풀이를 덧붙였다. 근대 문학 초창기의 번안 소설 가운데 수작을 가려 뽑은 ‘한국의 번안 소설’ 시리즈 전 7권 중 제1권이다. 원작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1867~1903)의 《곤지키야샤(金色夜叉: 금색야차)》다.

아름다운 곳이자 이별과 슬픔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대동강 변의 부벽루 아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꽉 찬 달빛을 안고 있다. 여자는 쓰러져 울며 매달리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뿌리치고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발길질을 당하는 여자는 바로 김중배의 금강석 반지를 쫓아간 심순애고, 남자는 애인의 변심을 경멸하고 저주해 마지않는 이수일이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유전된 드문 명장면 가운데 하나인 위 장면은, “놔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좋더냐? 놔라, 바지 찢어진다!”라고 대사를 치는 ‘웃으면 복이와요’식의 1970년대 코디미물에서, 전지현이 “여자에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도 사랑이야”라고 하자 지진희가 “가난하지만 이수일의 따뜻한 가슴이 진짜 사랑이야”라고 응수하는 2003년 모 음료수 광고 CF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오랜’ 주제, 사랑의 트라이앵글 혹은 삼각관계라는 ‘낯익은’ 구도, 육체적 순결이나 정조에 관한 ‘낡은’ 관념, 사랑이냐 황금이냐는 ‘빤한’ 물음들! 지금이야 ‘오래되고 낯익고 낡고 빤한’ 것들이지만, 1910년의 청춘남녀들에게는 ‘연애’라는 신문물이 던지는 최초의, 그래서 낯선 물음들이었을 것이다(사실 따져보면 지금 우리 시대의 소설이, 드라마가, 영화 또한 이 ‘낡고 빤한’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이처럼 《장한몽》은 근대 초창기 한국인의 연애와 사랑을 본격적인 화두로 꺼내 들면서, 연애와 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이 근대 한국인에게 중요한 문제로 틈입하는 장면을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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