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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한국 경찰 역사 ( 1945년 - 1960년 )


지난 60여 년 동안 국립경찰의 발자취는
우리나라의 헌정사와 마찬가지로 명암과
영욕으로 엇갈려 왔다. 조국이 해방된 후
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3년여 동안 우리경찰은
자주 독립 국가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으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 하에 있었고 미군정은
1945년 10월 21일 군정기구에 경무국을 창설하게 되었다.
이것이 곧 국립경찰의 모체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입되었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면서 경찰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UN의 감시 하에 남한에서 5.10 총선을 통해 재헌 의회를 구성,
헌법을 제정하고 정ㆍ부통령을 선출하여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다.
정부수립에 반대하는 공산폭도를 연행하고 있다.







1948년 8.15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후
서울 시내에서 농악대 축하공연이 시작되자
기마경찰들이 기초질서를 위해 힘쓰고 있다.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식이 있었다.







1945년 8월 17일 국립경찰이 창설되기 전까지
국내의 치안을 위해 자치적으로
보안단이 편성되었다.







통신장비가 미비하던 1946년 당시,
경찰의 초창기에 사용된 통신시설의 모습이다.








1948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 14대 연대에서 좌익계열의 장병이 일으킨
여수/순천 반란사건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1950년 7월 10일 6.25 전투경찰들이 적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1951년 2월 10일 경기도 평택까지 후퇴했던 경찰대가
서울을 탈환한 후 입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경찰은 금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6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1946년 미 군정청 경무부에 여자경찰국이
설치됨으로서 비로소 여성도치안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여자경찰이 쌓아올린 금자탑은
국립경찰사와 함께 실로 찬란한 것이다.







6.25 이후 수복된 서울 거리를 자전거로 순찰하던
여자 교통경찰대는 교통질서확립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953년 지리산 공비 토벌을 담당한 서남지구 전투경찰이
작전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1954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제10주년
기념행사가 거행되었다







일본경찰로부터 물려받은 건국초기의
경찰 싸이카 모습이다.







1953년 12월 23일 해양경찰대 발대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초대 해양경찰대장으로
이상열 대장이 임명되었다







1953년 12월 16일 해상 대간첩 작전과 평화선 및
어로 보호 경비를 위해 181톤급
경비함이 동원되었다.







소방기구가 열악하던 당시, 1958년 최초로
고가사다리차를 도입해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가정을 방문하여 친절하게 호구조사를 하고 있는
경찰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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