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중년 남성의 ‘아름다운 일탈’을 그린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는 춤이 ‘그들만의 예술’에서 ‘일상의 활력소’로 대중에게 한발짝 다가서는 데 한몫 한다.
42세까지 모범적인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스기야마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아내 몰래 춤교습학원을 기웃거리고, 춤의 재미와 부끄러움 사이에 쩔쩔매는 ‘보통사람’의 모습에 권태로운 삶에 지친 대중은 적잖이 공감한다.

우리 사회에 ‘쉘 위 댄스(춤 한번 추실래요)’ 열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춤이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로서 당당히 사면·복권받는 계기가 됐다.
대학가와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스포츠댄스’ ‘사교댄스’ 강좌가 급증했고,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한번쯤 배워볼 만한 ‘여가생활’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여기서 추억의 시절로 가보자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장편소설 ‘자유부인’은 대학교수의 부인이자 선량한 주부인 오선영이 우연히 만난 남편의 제자와 춤바람이 나고, 유부남과 깊은 관계에 빠져 가정 파탄의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격렬한 ‘춤바람’ 논쟁과함께 광복과 한국전쟁 후 유입된 서구 자유주의 물결은 기존의 전통주의 사조와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그럼 그갈등에 대한 글을 보자

자유부인 논쟁

문학이 엄연한 현실사회 구조에서 존재하는 한 결코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면에도 변화는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눈물도 사랑도 윤리관도 모두가 혁 명을 일으키는 것이 전쟁 윤리인지도 모른다.
신문소설 [자유부인]은 바로 그러한 세태인심 속에 태어나는 전후의 암영을 상아탑의 미명 아래 위장된 대학가의 이면에 파고 들어가 바람난 대학교수 부인에 그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인데, 30여 년이 지난 오늘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흥밋거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때 만 하여도 아카데미의 그 고고한 영지에서 권위를 누려오던 대학교수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충격이 아닐 수 없었고 일반인에게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수 부인과 그 제자간 의 애정행각은 도저히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불륜의 행위이고 권위를 모독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생각하는 입장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중은 열광적인 관심을 기울인 문제작이기도 하다.
국어학을 전공하는 장태연 교수의 부인인 오선영 여사가 가정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양품점 에 나가면서 남편의 제자로부터 댄스를 배우고, 한편 장교수는 미군부대의 타이피스트인 박 은미 양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는 스토리 전개는 그 무렵의 세태 속에서 이내 인기를 모았다.
가정 주부들의 댄스바람, 계바람, 치맛바람 등이 한참 말썽을 빚고 성도덕의 퇴폐와 이혼 문제가 부쩍 늘어가는 등 이른바 전후 풍조가 휩쓸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자유부인]은 바람난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고, "마담, 마담...."하는 대학생의 보챔과 오여사 의 환심을 사려고 "최고급품으로 주십시오"라는 사기꾼 백광진 사장의 허풍이 새 유행어가 되었다.
황산덕 교수는 마침내 [자유부인]의 작가에게 공개장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사회적 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신성한 대학교수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이 소설의 연재를 즉시 중단해 줄 것을 골자로 한 공개장이었다.
그러나 작가 정비석은 즉시 반격문을 내었다.
작품을 다 읽지도 않고 작품을 중단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문학가를 모욕하는 탈선적 폭언이라고 지적하고 그러한 허무맹랑한 원성에 결 코 개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황산덕은 [다시 자유부인 작가에게]로 항의를 하였는데 여기서는 신문소설의 일반적인 통폐 를 지적하여 너무 독자의 감정에 영합하는 시속적 행위는 지양되어야 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좀 지나친 어휘를 사용한 반격문을 내었던 것이다.
'현실폭로 자체가 문학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문학정신이 그것으로 하여금 문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남녀 관계만이 문학이 고 성욕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한국의 진정한 문학을 좀먹고 문학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악화시키는 귀하야말로 문학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야비한 인기 욕에만 사로잡혀 저속 유치한 에로 작문을 희롱하는 문화의 적이요, 문학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비평사적 견지에서 논쟁으로는 성격이 다른 것일지 모르나 한 독자의 예술에 대한 의견은 비평 본래의 전통이었던 예술의 옹호에 그 선의를 두고 있는 한, 무가치한 것 은 아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건전한 문학의 길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쟁의 성격은 우선 기성 모럴과 창작 현장의 거리감을 노출시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과거의 통념을 파괴하는 성윤리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기성모럴의 전통이기도 한 것이다.
[자유부인]의 작자는 당시의 세태를 그대로 썼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평범한 진리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이라면 차라리 생생한 신문기사가 더 실감을 자아낼지 모른다.
소설의 리얼리티는 보다 심 가하고 철저한 내면에서 작가의 체험을 승화시킨 창작이어야 한다.
홍순엽은 독자의 입장에서 문학의 권위에 있는 학자가 문학논쟁에 뛰어드는 한계를 지적하 고 특히 작품에도 모럴이 있듯이 평론에도 모럴이 있는 법인데 한 작가의 창작에 대하여 문화의 적이니 조국의 적이니 반동인 하는 용어는 온당치 않다고 하면서 창작의 자율성을 옹 호했다.
반면 백철은 한국소설의 반성적인 자료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난 문학에 대해선 문외한이니 차라리 영화쪽 안내문들이 이해가 쉽다.

1956년에 영화화된 영화"자유부인"의 내용을 살펴보자

감독-한형모
출연-박암,김정림,이민,김동원,양미희

◈내용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근대적 여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자유부인>은 대학교수의 부인인 선영은 권태로운 일상을 탈피하고자 사교춤을 배우면서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교수 태연은 이런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이 반성하고 돌아올 날만을 기다린다.
한편 태연 또한 여대생 제자와 사랑을 나누는 외도를 저지른다.
그러나 선영과 태연은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고 그리워함을 확인하게 되고, 자신들의 외도를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오는데...

오선영이 걸음을 옮기는 사회적 공간은 ‘최고급’ 외제화장품과 수입산 ‘악어 빽’이 쇼윈도우를 장식하고 온몸을 흔드는 맘보춤이 넘치는 댄스홀의 공간이다.
‘25시 다방’에서는 대한민국 ‘제비’의 원조 춘호가 기름끼 흐르는 눈으로 “마담 아러뷰”를 외치며 오선영에게 접근하다.
유난히 강조되는 오선영의 시선은 이 영화를 보는 여성관객의 눈길을 향내나는 양품과 양식당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정작 여성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오선영의 선망의 눈빛이 아니라 고무신을 신고 거리를 누비는 그녀의 발걸음,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의 포스터는 “당신이 장태연 교수라면 아내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을 지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교수부인이 바람을 피웠으니 사회적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는 여론과 “교수의 부인도 사람인 바에야 고리타분하고 비근대적인 생각은 탈피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결하는 가운데 새로운 결말을 기대하는 여성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보자.
'당신이 오선영이라면 젊은 제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아내에게만은 정숙을 요구하느 이중적인 가부장인 장태연 교수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지으시겠습니까?“
2000년대 여성관객은 집문턱에서 멈춘 오선영에게 어떤 주문을 하겠는가?

◈요모조모
대학 교수 부인 오선영은 충실한 가정 주부였으나 우연히 명사들의 모임에 나가 바람이 들기 시작한다.
정비석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50년대 말 자유화 바람과 함께 세간에 불어닥친 열풍 중 하나인 춤바람을 소재로 하여, 해방 후 한국영화의 대중적인 중흥을 가져오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그런 파격적이고 시대상을 극명하게 반영한 내용 외에도 촬영 감독 출신답게 한형모 감독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카메라워킹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 키스 장면이 삽입된 영화(한형모 감독의 1954년작 <운명의 손>)를 연출하기도 한 한형모 감독은 '자유부인'에서도 크레인 샷을 비롯해 구도 등에 있어서도 당시 영화와 다소 차별화된 화면을 만들어냈다.
지금 보면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춤을 추는 무도장의 모습이나 말씨, 50년대 서울 거리의 모습 등 오히려 낯선, 어쩌면 이국적이기까지 한 장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계급차이나 빈부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일단을 춤바람이란 모티브를 통해 풍자하고 있기도 한다.

대학교수의 부인과 춤꾼과의 바람이란 설정은 현재까지도 한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모순의 단초가 어디에서부터 있었던가를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김정림의 데뷔작이기도 한 '자유부인'은 아마도 60대 이상의 이른바 왕년의 한국영화 관객들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내 인생의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당시 중년 부인들의 부허한 생활 태도와 윤리관을 다루어 당시 사회의 큰 논란과 물의를 일으켰으며, 판매 부수도 최고를 차지하였다.
당시, 이 문제를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이 법과 대학의 황산덕(黃山德) 교수였는데, 그는 어째서 대학 교수의 부인을 그토록 나쁘게 표현했는가를 따졌다.
단순히 대학 교수를 소재로 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럼 어떤 직업을 소재로 하느냐는 공방전으로 꽤나 시끄러웠으나, 황산덕의 판정패로 끝났다.
영화도 원작 못지않게 큰 화제를 낳았다.
원작에서 묘사되지 못했었던 장면, 표현들이 추가로 첨가되었고, 영화가 상영되면서 관객의 생각을 두 갈래로 파벌을 만드는 경향까지 이르렀다.
교수의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해서 이 영화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는 측과 또 한편에서는 교수의 부인도 사람인 바에야, 그리고 세상이 많이 변하지 않았느냐, 고리타분하고 비근대적인 생각은 탈피해야 한다해서 희비쌍곡선이 벌어진 매개체를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했다.
주연 여배우 김정림은 실제로 다방의 마담이기도 해서 화제거리었다.

                                                                                             [ 출처 : 세계일보, 문학동사람들, 네이버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