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한번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추석 보름달 (1969년 9월26일)

▲"싼 것이나 사 입혀야죠" 추석 한산한 시장에 나온 어머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 (1968년 10월5일)

▲콩나물 시루 같은 객차에나마 미처 타지 못한 귀성객들은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

(1969년9월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 변하기도.(1969년 9월24일)

▲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

(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철도 직원외에도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경찰관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 장면을 방불케했다.

(1969년9월24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광주고속버스정류장.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홍제동. (1970년 9월15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잔뜩 찌푸렸던 추석날씨가 오후부터 차차 개자 고궁에는
알록달록한 명절옷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찼다. (경복궁. 1976년 9월11일)

▲ 꿈속에 달려간 고향. 지하도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새우잠을 자는 귀성객들.

 (서울역앞에서. 1978년 9월16일 새벽2시)

▲ 추석 전날 시골 풍경 (1980년 9월)

 ▲한복정장차림으로 추석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째의 일가족.
올해 1백살난 姜敬燮할머니가 시부모의 묘에 절을 할때

80세된 며느리 呂判敎할머니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부와

문중일가 20여명이 지켜보고 있다.

 (慶北 金陵군. 1980년 9월24일)

▲추석 귀성객 (1980년)

 ▲ 추석 귀성객은 돌아오기도 고달프다. 통금이 넘어
14일 새벽 0시20분에 도착한 연무대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객들이
야간통행증을 발급받고 있다. (1981년 9월14일)

▲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1982년 10월3일)

▲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 추석귀성을 위한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행렬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끝이 없이 늘어서 있다.

(여의도광장. 1983년 9월10일)

▲ 이번 추석 귀성길에는 고속도로 국도마다 차량홍수를 이루면서
중앙선 침범, 끼어 들기등 무질서한 운행으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혼란을 빚었다 (벽제국도.1987년 10월7일)

▲ 24일 서울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귀성객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1988년 9월24일)

▲추석 귀성열차표를 사기위해 서울 용산역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 (1989년 8월27일)

▲가다가 쉬다가... 추석인 14일오전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귀성객과 성묘객들의 차량이 몰려 평소보다 2~3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1989년 9월14일)

 ▲ 멀고 먼 귀성길 5일부터 추석귀성 열차표 예매가 시작되자
6일 발매되는 호남선 열차표를 사려는 시민들이앞자리를

뺏기지 않기위해 텐트와 돗자리까지 동원,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 한가위 가족나들이 (동작대교. 1992년)

[사진출처 : 동아일보 사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