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김일과 프로레슬링


꽉 막힌 가슴 뚫어주던 '박치기 한 방'


'동경 역도산(東京 力道山)'. 1956년 불법 체류자로 일본에서 구금된 27살 한국 청년이 매일같이 써 보낸 편지의 수신인 주소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 이야기를 듣고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붙들린 청년의 이름은 김일(1929~2006).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우연히 편지를 발견한 역도산은 신원 보증을 서서 김일을 석방시키고 제자로 받아들인다. 스승은 골프채로 머리를 때려가며 김일에게 박치기를 가르쳤다. '코브라 트위스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16문 킥의 자이언트 바바도 역도산 밑에서 김일과 함께 운동했다.

1963년은 김일에게 운명적인 해였다. 스승 역도산이 피살된 이틀 뒤인 12월 10일 김일은 WWA 세계태그챔피언이 됐다. 역도산의 죽음으로 방황하던 김일 앞에 나타난 새로운 후원자는 김일의 귀국을 주선하고 체육관과 합숙소를 마련해주며 성원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60년대에 속속 생겨난 한국방송공사(1961), 동양방송(1964), 문화방송(1968)의 '방송3사' 경쟁구도도 김일과 프로레슬링의 후원자였다.
시인 유하가 말하듯 "박통 시절, 박통 터지게 인기 있었던 프로레슬링/ 김일의 미사일 박치기에 온국민이 들이받쳐서/ 박통 터지게 티브이 앞에 몰려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만화방으로, 다방으로, 동네 이장댁으로 텔레비전 수상기를 찾아 모여들었다. 흡혈귀 브라쉬, 인간산맥 압둘라 부처, 괴력의 에이켄 하루카 등도 무섭지 않았다. 김일이 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의 경기는 일제 강점, 미군정,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수난사를 압축한 한 편의 서사시와도 같았다. 병따개를 숨겨온 일본 레슬러가 김일의 이마를 피범벅으로 만들어도 김일은 유혈이 낭자한 이마로 박치기를 해서 ㅅ ㅡ ㅇ리를 이끌어냈다. 그의 박치기는 온갖 울분과 억압을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피투성이 이마에 수건을 두른 김일의 손을 심판이 들어 올리면 사람들의 가슴에는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어디 김일뿐이었을까. 장영철의 드롭킥, 천규덕의 당수, 여건부의 알밤까기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동네 아이들은 역할을 바꿔가며 그날의 경기를 재연했다.

"읍사무소 마당의 텔레비전 앞에는 아이들이 열대여섯, 그 뒤로 어른들이 열명 남짓 둘러서 있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기미리'는 박치기로 유명한 김일 선수였다. 외자 이름에 '이'가 붙어 발음되다보니 "기미리"가 되어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 저, 저 물어뜯는다!' '어, 어, 반칙이다. 눈 찔렀어.' '박치기 혀, 박치기!' 아이들은 작은 입들을 오므라뜨리며 기운을 써대고, 고사리손을 부르쥐어 흔들며 신바람 나게 외쳐대고 있었다." (조정래 소설 '한강')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윗 프래시에 음악 삽입

출처 : 조선일보 20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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