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교련


"모형 M1 소총 들고 저물도록 뺑뺑이"


"독종은 우리에게 교련복 단독군장에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즉석에서 엎드려뻗쳐가 실시됐다. 그리고는 엉덩이에 빳다를 열 대씩 안겼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재생고무로 만든 벌건 M1 소총을 앞에총 자세로 쥐고 날이 저물어 수위실 지붕의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뺑뺑이를 돌렸다." 김소진 소설 '세월의 무늬' 속 교련복의 무늬를 58년생 시인 이재무는 이렇게 회고한다. "고교 시절 참으로 징글징글했던 것은 교련이었다.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당시엔 교련실기대회라는 게 있었다. 그 기간이 돌아오면 학사 일정이 예사로 바뀌곤 했다." ('생의 변방에서')

작가 은희경이 '마이너리그'에서 교련실기대회를 말한다. "그 행사를 위해 해마다 시내의 고등학생들은 매일매일 어두워질 때까지 교련복과 체육복을 벗을 틈도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살아야 했다. 여학생들은 압박붕대 사용이나 삼각끈 매기 같은 훈련이 끝나면 카드섹션과 제식훈련을 연습하느라 뙤약볕 아래 픽픽 쓰러졌다. 남학생들 역시 제식훈련은 물론이고 총검술 16개 동작, 각개전투와 국군 도수체조 연습을 함으로써…."
교련복 입고 군대식 사열과 분열 행진을 하는 교련조회가 있었다. M1 소총 분해 및 결합 연습도 했고 여학생들은 응급처치법을 주로 익혔다. 남자 고교생 및 대학생들이 교련 수업을 받게 된 것은 1969년부터다(여고생은 1971년).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일명 '김신조 사건'이 그전 해에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대학생 교련 교육은 1971년부터 한층 강화됐다. 예비역 교관을 현역으로 바꾸고 3학년까지 매주 2시간 훈련하던 것을 4년 간 매주 3시간 훈련에 모두 711시간을 이수하는 것으로 바꾼 것. 학생들은 크게 반발하여 교련 반대 시위에 나섰다.

80년대 남자 대학생들은 1학년 때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일주일 받고, 2학년 때 최전방 부대에서 이른바 전방입소교육을 받았다. 같은 학과 여학생들이 '위문편지' 써서 보내는 게 풍속도였다. 이러한 교육을 마치고 교련 과목을 이수하면 군 복무기간을 줄여주었다. 교련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도로 교련복은 많은 남자 대학생들의 일상복 구실을 하기도 했으며, 교련복을 입고 시위에 참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학생 교련은 1981년부터 2학년까지로 줄었고 1989년에 폐지됐다. 고등학교 교련은 1996년에 군사훈련이 없어졌고, 2003년 1월 의결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선택과목이 되어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내용과 명칭을 새롭게 바꾸고 2012년부터 바뀐 교과로 수업할 계획이라 하니, 사실상 폐지된 셈이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박인수-친구이야기

출처 : 조선일보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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