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넝마주이


"소쿠리에 애들 담아간다" 유언비어도

웬만한 동네에는 그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 커다란 소쿠리를 어깨에 걸머지고 집게를 들었다. 걸친 옷은 그야말로 넝마 수준이고 씻지 않은 거무튀튀한 얼굴에 벙거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고개는 푹 숙였다. 넝마, 헌 종이, 빈 병, 기타 고물을 집게로 집어 소쿠리에 넣는다. 특히 집 대문 옆 콘크리트 쓰레기통 안팎을 꼼꼼하게 뒤진다. 소리 없이 나타났다 사라져도 그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들을 일컫는 말은 넝마주이, 양아치, 씨라이꾼 등이었다. 양아치는 동냥아치에서 온 말이니 거지의 다른 표현이라 하겠는데, 쓰레기에 가까운 잡동사니를 줍더라도 어디까지나 구걸하는 게 아니라 자력자조하려는 이들이니 부적합한 명칭인 셈. 그때만해도 집집마다 빈 병, 폐지, 고물 따위가 있으면 버리지 않고 엿이라도 바꿔 먹는 시대였으니, 넝마주이들이 '물건'을 건지기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넝마주이가 나타날라치면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긴급경보를 날린다. "빨리 들어가! 저 소쿠리에 애들을 담아서 잡아간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왜 잡아가느냐 묻기라도 하면 이런 대답이 나온다. "잡아가서 밥도 안 주고 때리면서 넝마주이 일 시킨다." 더 영리한(?) 부모는 넝마주이를 자녀 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된다."
5.16 군사정변 직후 정부는 넝마주이들을 이른바 재건대에 편입시키려 했다. 많은 넝마주이들이 편입을 거부하고 단독으로 활동하거나 속칭 조마리(거지 왕초)가 관장하는 넝마주이 공동체에 들어가 일했지만, 정부는 경찰서별로 군대식 조직을 갖춘 재건대로 편입시켜 별도의 장소에 수용시키려 했다. 검거 할당량이 내려지는 일제단속기간이 되면 경찰은 호소할 곳 없는 넝마주이들을 잡아 할당량을 채우기도 했다 한다.

젊은 시절 한때 넝마주이 생활을 했던 시인 서정주는 '넝마주이가 되어'에서 그 시절을 회고한다. "하루 종일 주은 걸 팔아도/ 이십전밖에 안 되는 날은/ 아침은 오전짜리 시래깃국밥/ 점심도 오전짜리 호떡 한 개/ 저녁만 제일 싼 십전짜리 밥을 사먹었네/ 정동의 영국공사 뒤 풀밭에서 쉬노라니/ 분홍비치 장미 같은 앵키 소녀가 지나가며/ 유심히 보고는 얕잡아 외면하는 눈초리/ 그것에만 부끄럼도 화끈히 솟으며…."

사회의 냉대와 질시와 착취 속에서도 끈질긴 생활력을 보여준 넝마주이들 가운데는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어 자활에 성공한 이들도 있다. 그들의 일을 직종으로 일컫자면 '재활용 자원 수집상' 정도가 적합할 것이다. 고은 소설 '화엄경'을 영상화한 장선우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원작의 문수보살은 넝마주이 문수로 등장한다. 지극히 높은 지혜의 보살이 지극히 낮은 넝마주이로 현신한다는 것.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우리 곁에 온 예수,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라보고 박대한 '머리 둘 곳 없는' 예수였을지도 모르겠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조용필-돌아오지 않는 강

출처 : 조선일보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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