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전보(電報)


휴가 단골 金상병, 알고보니 '…위독' 전보 덕분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 떠나 서울 에서 팍팍한 유학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전보는 각별한 추억이다. 빠듯한 시골 살림에 용돈 넉넉히 부쳐줄 수 있는 부모는 드물었다. 서울 유학생이 짜낸 아이디어는 이런 내용의 전보였다. '책값 송금', '약값 필요.' 글자 수대로 전보 요금이 정해지니 글자 수는 적을수록 좋았다. 책 사보고 싶고 몸 아프다니 무리해서라도 들어주는 부모가 많았겠지만, 알고도 속은 경우도 적지는 않았다.

군 복무 시절 전보에 얽힌 추억도 많다. 집안에 생긴 급한 일을 군대 간 이에게 알리려면 관공서를 통해 보내는 전보, 이른바 관보(官報)를 이용했다. 집안에 생긴 급한 일이란 가족 신변의 변화, 특히 누군가의 사망일 경우가 많았다. 이 관보를 휴가 가는데 써먹은 군인은 또 얼마나 될까? 멀쩡히 살아계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노라 관보를 치게 하여 휴가를 갔던 것. 군대 간 자식 얼굴 한 번 더 볼 요량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노라 관보를 친 부모도 있지 않았을까?

편지에 비할 때 전보는 무표정하고 사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편지가 로망이라면 전보는 현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은 '27일 회의참석 필요. 급상경 바람 영'이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이렇게 스스로와 약속한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ㅅ ㅐ ㄲ ㅣ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ㅅ ㅐ ㄲ ㅣ(등록불가 단어로 풀어씀)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전보 문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이를 위해, 우체국에서는 다양한 전보 문장 사례를 만들어 두고 선택하게 하기도 했다. 이른바 전보 약호다. 시인 함성호는 '경조 전보 약호 문례'라는 시에서 '5141 구사하 전역을 축하하며,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6361 졸육하 학위 받음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5041 지사하 취직을 축하한다 창조의 역군이 되어라' 등의 약호 문례를 선보이기도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85년 9월 28일 서로전선(西路電線)이 개통되고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됐고, 전신업무 개시는 같은 해 10월 3일 당시 한성(서울)과 인천 사이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이후 전화가 일반화되기까지 전보는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소식전달 수단이었으니, '모친 위독 급귀가' 전보에 놀란 가슴을 안고 급히 고향을 향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조사에 대한 축전(祝電)이나 조전(弔電)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에 밀려 급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6년,
싱가포르 에서는 2007년, 태국 에서는 2008년에 전보 서비스가 막을 내렸다하니 우리도 멀지 않은 것인가? 가족이나 지인의 생일날 축전 하나라도 보내 둘 일이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동심초/바이올린

출처 : 조선일보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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