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예비고사


大入 예선전… '쪽집게 점집' 북새통

세계에서 가장 자주 바뀐다는 우리나라 대입제도지만 큰 틀에서 오래 지속된 제도는 예비고사. 본고사 병행제(1969-1980)와 학력고사 체제(1981-1993)다. 병행제는 선택형 문제가 출제되는 예비고사 성적이 30% 반영되고 국·영·수 중심의 대학별 본고사를 치른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도 월드컵 본고사를 앞두고 만만한 팀과 예비고사 평가전을 치르곤 한다. 단답형 문제가 출제된 시기도 있었지만, 선택형 '찍기'였던 학력고사에는 9회 말 역전 찬스도 있었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암기과목을 파고드는 게 그 전략이다.

김원일 소설 '세상살이·1'이 그때를 말한다. "이번 태희가 졸업한 학교 예비교사 성적이 어쨌는 줄 아나? 졸업생이 두 반에 백삼십 명인데 그중 이백 점 이상이 고작 둘이라. …그런데 면도 아닌 읍내 학교에서 겨우 이백 점 이상이 둘인께 그 녀석들도 잘해야 대구 이류 대학밖에 몬 들어가."

지역별 예비고사 점수 커트라인을 넘어야 그 지역 대학에 지원해 본고사를 치를 수 있었고 지역 간 대학 간 격차는 상당했다. 박완서 소설 '꼭두각시의 꿈'이 전하는 입시철 점집 특수는 지금도 여전할까?

"예비고사 발표가 나고 입학원서 쓸 때부터 전화통에서 불이 난다. 큰누나는 주로 서울의 고명한 점쟁이에 관한 정보를 모아들인다. 엄마, 엄마, 한강 맨션의 열아홉 살짜리 처녀 점쟁이가 학교 점엔 귀신이래요. 이러면서 어머니를 부추긴다. 서울엔 학교 점엔 귀신이라는 점쟁이가 참 많기도 많다."
그 자신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예비고사 세대 작가 김형경은 소설 '세월'에서 수학에 자신 없던 많은 수험생들의 고민을 전한다. "그 여학생은 '진학'이라는 잡지를 펴놓고 갈 대학을 찾아본다. 예비고사 커트라인과 본고사 시험과목을 체크한다. 그러다가 적합한 학교를 하나 발견한다. 그 여자가 아는, 황순원, 조병화 교수가 있고, 그 옆으로 그 대학을 나온 유명 문인들의 이름이 여럿 적혀 있는 학교,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무엇보다 그 대학 인문계열은 수학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예비고사 학력고사 전국 수석 학생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잠은 7시간 이상 충분히 잤고 학교수업에 충실하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고 법대에 진학해 약한 이를 돕고 정의를 실현하는 법조인이 되겠다." 신문에 실린 사진도 똑같다. 축하 전화받으며 웃는 모습. 밤새워 공부해도 성적 신통치 않은 학생들 가슴에 바람이 서늘하다. 수석 학생 인터뷰 교육 당국 배후조종설의 진실은 누가 알고 있을까? 오늘 밤에도 대입수험생들의 깊은 한숨이 바람에 스친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조영남-옛생각

출처 : 조선일보 200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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