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동시상영관


스크린엔 비 내리고 발 밑으로는 쥐가…

동년배 작가 박완서와 최일남은 젊은 시절 어느 날 서울 삼선교 근처 동도극장에서 서로 스쳐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 "개봉관에서 실컷 상영한 다음에야 차례가 돌아올망정, 동도극장은 명화만 틀었지. 거기서 '미녀와 야수'도 보고, '자전거 도둑'도 보고,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인생유전'도 보았지."(최일남 '돈암동')

"동도극장이 단골이란 건 엄마에게도 반 친구들에게도 비밀이었지만, 따로 친구들하고도 곧잘 극장출입을 했다. 어둠 속에서 교복의 흰 깃은 단박 눈에 띄게 돼 있어서 날쌔게 안으로 구겨 넣고 시치미 떼고 앉았다고 누가 학생인 걸 모를까마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여먹은 것 같은 쾌감을 맛보곤 했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배우 이순재가 대학시절 하루 종일 죽치던 곳도 동도극장이다. 기억 저편의 이름들 대왕, 성남, 계림, 미아리, 삼양, 아폴로, 세일, 영보, 천지, 동일, 연흥, 우신, 동양, 평화, 오스카, 새서울, 중화, 금성. 재개봉관을 이류극장, 동시상영관을 삼류극장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 바야흐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시대가 오고 있었던 것. 이류 개봉관으로 분류되던 미아리 대지극장, 영등포 명화극장, 서대문 화양극장 '영웅본색'의 전설도 그야말로 전설이 됐다.
동네 상가 삼류극장 풍경도 마찬가지. 동네 안경점 예식장 광고할 때부터 줄곧 비 내리는 열악한 스크린 위로 관객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는 자욱한데, 앞 사람 머리가 스크린의 아래 절반 가까이를 가리기 일쑤다. 발 밑으로 쥐가 기어 다니고 휴게실 난로 위에선 오징어가 몸을 비튼다. 국산 에로영화 한 편 '때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휴게실에서 식히노라면 어느 사이 스크린에는 주윤발이 쏘는 총탄이 난무한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에서 '불'자는 무소용.

시인 배용제는 '거추장스러운 날들이 주머니 속에서 뒹굴던 한때, / 그때 나 삼류극장의 어둑한 통로를 걸어 / 환각의 세계로 잠입했었네'(삼류극장에서의 한때1)라 말하고 시인 유하는 '파고다 극장을 지나며―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를 통해 이렇게 회상한다. '끈질기게 그 자리를 지키는구나, 파고다 극장 / 한땐 영화의 시절을 누린 적도 있었지 / 내 사춘기 동시상영의 나날들 / 송성문씨 수업 도중 햇살을 등에 업고 빠져나온, / 썬샤인 온 마이 쇼울더, 그날의 영화들은 / 아무리 따라지라도 왜 그리 슬프기만 하던지 / 동시상영의 세상 읽기가 / 나를 얼마나 조로하게 했던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장사익-동백아가씨

출처 : 조선일보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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