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주택복권


"준비하시고~쏘세요!"

 

과녁이 빠르게 돈다. "준비하시고~쏘세요!" 눈 깜짝할 사이 과녁에 꽂히는 화살. 복권을 사지 않은 이들도 괜히 살짝 긴장한다. 짧은 스커트 미녀들이 어떤 부분에 꽂혔는지 화살을 살짝 들어 보여주고 싱긋 웃는다. 지켜보던 많은 복권 구매자들의 시름을 초대가수의 노래가 달래준다. 이 유구한 방식은 1979년 이후 '쏘세요'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공이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주택복권 추첨 방송 시간 다방 안은 술렁거렸다. 미스 김의 살가운 당첨 응원에 커피에서 쌍화차로 주문 급변경하는 '사장님'들도 많았다. 한 주 내내 주머니 속 복권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된 하루하루를 견뎠다는 이들도 많다. 흥청망청 당첨금 탕진에 가정파탄 패가망신은 요즘 로또 시대와 마찬가지.

우리나라 정기발행복권의 출발 주택복권은 1969년 당시 판매가 100원 당첨금 300만원으로 월 1회 50만 장 서울에서만 발행됐다. 서울 서민주택이 200만원 안팎이던 시절이다. 발행 목적은 저소득층 주거안정사업 지원. 주 1회 발행은 1972년부터였고 1등 당첨금은 1978년 1000만원, 1981년 3000만원, 1983년 1억 원, 2004년 5억 원이 됐지만 복권 통폐합과 로또 열풍 속에 2006년 폐지됐다.
주택복권 당첨되려면 꿈이 필수였나 보다. 돼지 한 마리가 ㅅ ㅐ ㄲ ㅣ(금지단어라서 풀어 씀) 수십 마리를 거느리고 집으로 들어왔다는 식의 돼지꿈은 고전적이고, 조상님 꿈, 모르는 여인이 자기 집에 들어와 애를 낳는 꿈, 배우자 몰래 외도하는 꿈, 집이 홀랑 불타버리는 꿈, 총 맞고 죽는 꿈, 산신령이 나타나 복권 사라 말해 줬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꿈 등 다양하다.

평생 복권과 담 쌓고 지내다 우연히 산 복권이 당첨되기도 했다지만 상당수 당첨자들은 매주 구입하는 열성파들이었다. 당첨에 얽힌 꿈은 열성파들의 자기충족적 예언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간절히 바라며, 당첨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일종의 주문을 건 결과가 범상치 않은 꿈이었을 듯. 작가 한승원이 '어린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복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살피게 한다.

"가난한 구두닦이 청년이 주택복권을 한 장 샀는데, 그것이 당첨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들떠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고, 술도 많이 마셨어요. 얼근하게 취한 다음 그 청년은 구두닦기 도구들이 들어 있는 통을 강물에 던져버리며 말했습니다. '이제 잘 가거라, 이 더러운 구두닦기통아. 나는 너 없이도 잘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간 다음 술에서 깨어나 보니 당첨된 복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첨된 복권을 그 구두닦기통 속에 넣어 놓았던 것입니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최헌-카사블랑카

출처 : 조선일보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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