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교복


쑥쑥 자라던 시절… 한 벌로 3년 버텼다

1983년 교복자율화 시행 이전 교복은 교복 그 이상이었다. 요즘 중고생들의 각양각색 교복과 '그 시절' 교복은 의미가 사뭇 달랐다. "이 옷을 중학교 3년 졸업할 때까지 입어야 혀. 알았제?" 중고교 시절을 동복 한 벌, 하복 한 벌 각각 한 벌씩으로 지낸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 말씀이다. 3년 입을 옷이니 처음 살 때는 몸보다 훨씬 크다. '3학년쯤 되면 그럭저럭 옷이 맞았다. 그때쯤 되면 옷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지가 길어 걷고 다녔기 때문에 3학년이 되기 전에 이미 접은 속이 떨어져서 어머님은 재봉틀로 튼튼하게 단을 만들어주곤 했다.' (김용택 '이 옷으로 고등핵교 3년을 마쳐야 혀')

남학생 교복은 턱 찌르고 목 욱죄는 딱딱한 목둘레를 고리로 채워야 했다. 한자 중(中) 또는 고(高)자 금속제 표지가 달린 모자 쓰고 교표 새겨진 띠쇠 달린 허리띠 차고, 멜 수 있는 끈은 없고 손잡이만 달린 학생가방을 들면 등교 준비 끝. 목둘레 고리 풀고 웃옷 단추 몇 개 풀고 소매 말아 올리고 모자 삐딱하게 얹은 반항 패션도 많았지만 등교 때 완장 찬 규율부 학생들 눈길은 매섭기만 하다.
'하얀 춘추복을 입을 계절의 여학생들은 멀리서 보면 모두가 순결하고 예뻐 보였다. 남학생들이야 가을, 겨울, 봄 세 계절 내내 검은색 동복을 입었으므로 이름표의 모양과 색깔로만 학교를 구분할 수 있었지만 여학생들은 달랐다. 쎄일러복도 있었고 허리를 잘록하게 매서 아랫단의 주름을 강조한 옷도 있고 자주색이나 남색 끈으로 리본을 매기도 했다.' 은희경 소설 '마이너리그'가 전하는 여학생 교복 사정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인가.

'총총히 정독도서관을 향해 비탈진 언덕길을 올라가느라 땀이 슬맺힌 교복 차림 여학생들의 쇄골 안쪽 살갖.' 교복 입은 여학생 훔쳐보던 그 시절 남학생들 가슴 설레게 만드는 작가 김연수의 관찰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교복을 개조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바지 아래통을 넓혀 나팔바지를 해 입고 교모 챙을 한껏 구부리고, 핀으로 치맛단 줄여 입는 게 고전적이다.

교복 튜닝의 최고수들은 멀쩡한 교복 안과 바깥을 뒤집어 입는 속칭 '우라까이'(뒤집기를 뜻하는 일본어 우라가에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복 뒤집기가 반드시 멋 내기 개조만은 아니었다. 오래 입어 색이 너무 바랬지만 새 교복 살 형편이 못될 때, 형제끼리 물려 입을 때도 이루어졌다. 이럴 경우 보통 왼쪽에 있는 웃옷 윗주머니가 오른쪽에 있게 되니 창피했다는 이들도 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이 유명한 구절은 고등학교 졸업식 때 교복 찢고 연탄재 뒤집어쓰는 파괴로 과격하게 실현되곤 했다.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이수미-여고시절

출처 : 조선일보 200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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