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이 일상생활은 영위될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과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은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건 자체에서 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관념 때문인 것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관념 이란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 돌이키는 회심의 작업은 정신위생상 마땅히 있음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있을 뿐이다.

   울타리가 없는 산골의 절에서는 가끔 도둑을 맞는다. 어느 날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내방 했다.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엘 다녀오다가 뒤꼍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놓고 일어나려다가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에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 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밤손님에게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은 선가(禪家)에서 차원을 달리해 쓰이지만 물건에 대한 소유관념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 그 밤손님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후문...
 
1970. 5. 14
글출처 : 영혼의 母音(법정스님,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