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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저녁에 당신에게

오작교 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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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알고 있지만 딱 한 사람, 남편의 모습만은 알지 못합니다.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유난히 동안이었던 남편, 그가 만약 살아 있다면 2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 주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남편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끝까지 병실을 비켜주었던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난 뒤 연락이 끊어졌던 남편의 친구는 이곳저곳을 수소문해서 마침내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녀는 좀 다른 의미의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남편과 가장 절친한 친구였고, 형제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남편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친구였으니 이 사람의 모습을 보면 나이 든 남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녀는 한 시간 전부터 약속 장소에 가 있었습니다. 세월은 어떤 흔적을 남기며 지나가는 것일까?

경험한 적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을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이 든 남편의 모습을 짐작해보고 싶은 간절함이 모든 걸 뛰어넘게 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선 한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꼿꼿함을 잃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한 남자. 중년의 여유보다는 옮겨 심은 나무처럼 고단한 흔적이 역력한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남편의 친구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찻집을 나왔습니다.

결코 남편 친구의 모습에 실망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전혀 없기를 기대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앞의 현실과 지나가버린 안타까운 세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그것이 갑자기 너무 막막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나와 버렸습니다. 친구를 통해 남편의 세월을 짐작해보려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어디선가 멈춘 것은 멈춘 대로 두는 것이 맞다는 것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온 뒤에 그녀는 전화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그녀의 안타까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의 친구는 20년 만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더라고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글 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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