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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 / 저녁에 당신에게

오작교 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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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결혼한 지 12년 만에 처음 장만한 집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내일 하루는 휴가를 냈고, 오늘도 일찍 퇴근해서 마지막 짐 정리를 하던 그는 먼지를 뒤집어 쓴 몇 개의 앨범을 발견했죠.


  모서리에 갈색 얼룩이 진 빛바랜 앨범, 그걸 펼쳐보면 짐 정리가 늦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앨범을 펼쳤습니다.


  어머니가 뜨개질 해준 망토를 걸친 어린 그와 지금의 그보다 더 젊은 아버지가 옛날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사진.


  사진 속의 그 집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장만하셨던 집이었습니다. 산동네의 낡은 집이었지만 아버지에겐 저택이었을 그 집.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간 기억은 그에게 없지만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던 장면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습니다. 최초의 집을 삼촌 때문에 날려버리고 더 높은 산동네로 리어카를 끌며 이사를 해야 했던 기억. 그에겐 그저 이사하던 날의 기억이지만 아버지에겐 눈물이거나 통곡이었을, 그런 이사였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는 건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언제나 책을 읽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소설과 영화를 특히 좋아하셨죠. 그가 어버지와 유일하게 함께 본 영화도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다섯 딸 중 세 딸이 아버지를 등지고 집을 떠나버리고, 고향집마저 잃게 된 가장이 이사를 하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수레에 짐을 싣고 고향을 떠나며 가장이 마지막 힘을 내어서 "애들아, 가자"라고 말할 때, 아버지가 눈물을 떨구시던 모습을 그는 보았습니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눈물이었죠.


  앨범 속에 머무르고 있는 젊은 아버지를 향해,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그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내일 이사해요.

처음으로 제 집을 마련해 이사를 갑니다.

남보다 많이 늦었지만 제 힘으로 집을 마련했다고

아버지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때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던 날,

"애들아, 가자!"라고영화 속의 아버지가 말할 때

아버지가 왜 저 몰래 숨죽여 우셨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제 집에서 슬프게 떠나는 일이 없도록

욕심 부리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도 편안하게, 이젠 가난하지 않게 잘 지내세요.



  한 시절을 덮듯 앨범을 덮었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가난해서 서글펐을 아버지 생각이 정말 많이 나는 저녁이었습니다.



글 출처 : 김미라(저녁에 당신에게, 책읽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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