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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어서 고맙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오작교 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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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우울하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세상은 더 살벌해지고, 믿었던 친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곁에서 멀어지고, 하는 일은 안 되고, 의욕은 추락해 날개를 접었지?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진화하기 위해 우린 이 별에 왔으니까. 진화는 우여곡절, 파란만장, 진퇴양난, 백척간두의 인생에서 우리가 얻어낸 의식의 성장 같은 것이니까. 우리가 이 별에 온 이유는 진화하기 위해서이다. 진화는 배움이니 반복되는 학습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뭘 배워가기 위해 이 별에 와서 고통받는가? 고통을 통해 아무것도 배워가지 못한다면 고통은 통증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죽고 샆은 마음이 든다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나 죽자. 죽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몸뚱이만 기능이 정지된다. 몸마저 잃어번린 영혼의 낭패감이 어떻겠는가. 그땐 이미 죽었으니 죽을 수도 없고 정말 괴롭게 된다. 죽고 싶다면 죽을 힘을 다해 살자.


   지금 좌절을 겪는다면 그 좌절은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나를 휘저어놓을 것이다. 슈베르트라면 그 에너지를 가곡에 불어넣었을 것이다. 혹시 그가 시인이라면 시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힘든 이민자 시절을 겪은 마크 로스코는 장학금을 받지 못해 대학을 그만둬야 했다. 남보다 늦게 그림을 시작한 그의 재능이 꽃피기까지 겪어야 했던 좌절은 그의 예술에 소중한 에너지로 작용했다. 그러나 누군가 나의 좌절에 기름을 붓는 이가 있다면 기름 붓는 그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피하라. 인간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이해하기엔 너무나 에너지 소모가 큰 대상은 안 보는 것이 좋다. 피해 의식으로 똘똘 뭉쳐 공격적인 이는 치명적인 유형이니 맞서서 싸우기보다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자비심으로 바라보면 그도 바뀐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인내심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피해 의식은 치명적이지만 그 밑에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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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치명적인 유형은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언제나 모든 원인은 상대에게 있고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스스로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비열한 도피자일 뿐이다. 마음의 변방으로 자신을 유폐시켜 주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 그들의 특징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을 피하거나 책임 소재가 자기라는 걸 모르는 척한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르르 하는 객들은 위험하다. 그런 이와 함께 가면 치명적인 일을 겪기 쉽다. 치명적인 사람을 만나면 맞서서 싸우지 말고 피하라. 


   치명적이진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동물 종류가 많듯 세상엔 많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은혜를 입어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 은인을 오히려 해치려 하는 사람, 베풀기만 할 뿐 대가를 바라지 않은 사람. 대가도 없이 바라기만 하는 사람 등 많고 많은 유형과 함께 우리는 공존한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머지않아 고마워할 일이 끊길 것이며, 고마워하는 이에겐 다시 고마워할 일이 생기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똑똑한 척 세상을 살아봐야 지혜가 없는 이에게 세상은 불만족스러운 것이니 지식보다 지혜가 삶의 양식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건 우리는 결국 이 별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하며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익숙한 세상과 이별하고, 그다음 차원을 향해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인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침묵의 사막은 우리를 공포에 잠기게 하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 펼쳐질 밤하늘의 별은 지금까지의 여정이 다 이순간을 위해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개닫도록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강조한 에크하르트 톨레는 심리적인 시간에서 놓여나라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항상 현재의 시간인 지금에 주목하면서 시간을 주변 장치로 이식한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나 역시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설적이지만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시간에 집중하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여기, 그러니까 'hera & now'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그 상태를 매 순간 의식하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매 순간 깨어 있는 상태로 있으라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지 마음의 행방을 살펴보라.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아니면 부산인가 대구인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떠나 어디에 가 있는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심리적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어라"는 톨레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 뿐 결코 과거의 시간이 미래의 시간을 살 수는 없다. 톨레의 말은 결국 과거나 미래에 매여 있는 마음에서 벗어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상황이 힘들다고 해서, 좀 우울하다고 해서 마음이 미리 당겨서 죽을 이유는 없디.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되 그 죽음이 현재가 되도록 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는 찰나 속에서 영원한 현재를 살 뿐,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어서 당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기적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누군가가 아프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다. 온종일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던 사람과 통화가 되는 순간 떠오르는 말, "고맙다. 살아 있어서 고맙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근심하는 나이로 접어든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살아 있다. 오지도 않을 미래를 미리 마음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근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 있어서 고맙다. 지금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맙다.


글 출처 : 사랑하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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