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노숙자들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개를 가족처럼 아끼는 것은 좋지만, 당장 오갈 데 없이 끼니 걱정을 해야하는 처지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처음엔 의아하게 여겨졌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려 여섯 마리의 개들과 거리에 앉아 있는 노숙자를 본 적도 있다.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은 것인지, 길 잃은 개들을 동변상련으로 거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개와 함께 있는 것이 행인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더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그 젊은 노숙자를 발견한 것은 런던 도심의 뮤지컬 극장 앞이었다.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퇴근길의 인파로 극장 앞은 매우 혼잡했다. 그런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로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의 곁에는 순하게 생긴 개 두 마리가 서로에게 몸을 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개들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는 개를 쓰다듬어주고, 다른 산 손으로는 책을 잡고 있는 모습. 그 둘레에는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앞에 놓은 찌그러진 종이컵에는 동전 몇 개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동전을 넣든 개의치 않고 그는 독서에만 몰입했다. 해가 진 뒤였지만 그가 앉은 곳이 극장의 전광판 앞이라 책을 보기에 불빛은 충분했다. 복장이나 베낭 등이 양호한 상태인 걸 보니 그가 노숙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집을 잃고 가족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직 삶을 버티게 하는 두 가지 무기가 남아 있다. 두 마리 개와 한 권의 책. 개는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고, 책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그의 정신을 지켜줄 것이다. 어두워지는 거리에 서서 그를 오래 바라보며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그와 두 마리 개는 오늘도 어디서 밤을 보내고 있을까.



글출처 : 나희덕(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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