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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에 이르기를... / 느림과 비움

오작교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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뱡밥에 이르기를,

나는 싸움에서 감히 주인이 되기 보다는 객이 되려 하고,

감히 한 치를 나가지 않고 뒤로 한 자 물러선다고 했다.

 

 

  먼저 치기보다는 치려는 자를 막은 일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싸움에 임하면 전진하기보다 한 치 후퇴하는 길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싸움을 피하겠다는 얘기지요. 능동은 수동을 압도하지만 능동이 항상 수종을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수컷이 강하지만 늘 암컷을 이기는 것은 아니며, 설사 이긴다고 좋은 일은 아닙니다. 바위는 물길을 막아 서지만 물은 막아서는 바위를 넘어서 제 갈 길을 찾아 나갑니다. 나서서 힘으로 싸울 때보다는 뒤로 물러 서서 고요함으로 싸움을 피하는 게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 월요병은 없습니다. 아침에 서둘러 출근할 직장은 없어도 새벽에 일어납니다. 어젯밤에도 소나기가 내렸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날이 개고 하늘에 깔린 낮은 구름들의 윤곽에 오렌지색 빛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작은 대추들이 열려 있습니다. 심은 지 두 해 되는 나무지요. 작년에는 대추가 몇 알 매달리지 않았는데, 올해는 꽤 많이 매달렸습니다. 이 작은 대추열매를 가리켜 "처녀 젖꼭지만 하다!" 했더니 누군가는 질색을 하더군요. 대추나무 가지에는 변태를 하고 남긴 매미 허물 하나가 허옇게 걸려 있습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숲과 산을 살펴보니, 어찌 그리 녹색이 깨끗하고 아름다운지요. 잘 빨아서 다림질해 놓은 녹색 융단 같습니다. 아침이라 아직 덥지도 않고 습기를 많이 품지 않은 공기도 산뜻합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숲은 짙고, 물은 깊어졌습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아침부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윗집의 경운기도 내려오지 않아 집 안의 견공들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저는 이런 한가한 시간을 좋아합니다. "끓는 냄비 같은 머리"를 잠시 비우고 무념의 텅 빈 상태 속에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합니다. 물론 몰입해서 일할 대 저 배꼽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기쁨과 성취감도 좋지만, 한껏 모아 마음을 게으르게 이완할 수 있는 여유도 좋습니다.

 

  삶을 이롭게 한다는 세상의 의무와 미덕들은 한 꺼풀 벗기면 우리를 기만하는 음모가 숨어 있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국가와 사회가 기리는 의무와 미덕 들에는 가짜 후광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나는 관습을 경멸하지는 않지만 항상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속에 있는 내면의 도덕, 나의 자발성, 자유 의지지요. 나는 내가 원할 때 밥을 먹고, 내가 원할 때 일을 하고, 내가 원할 때 잠잘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평소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를 우려내 마십니다. 오늘 아침에는 커피가 생각납니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밀린 일들을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곡 해야 할 일들 몇 가지를 미뤄뒀으니 아마 다른 때보다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중복도 지나가고, 돌아오는 8월 8일이 입추네요. 그 일주일 뒤가 말복이니 여름도 다 끝나가는 거지요. 여름 끝날 대까지 두루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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