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강하고 굳세 진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함께 음악을 듣던 청춘처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하늘색 스웨터 한 벌을 함께 입고 있던 노부부처럼.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을 연민으로 기리고 굳세고 단단한 것을 내놓고 경멸합니다. 생명의 본디 형용이 부드럽고 약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삶은 이미 그 안에 죽음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가 오고가는 세상입니다. 산 자가 죽음을 피할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살아 있음의 기쁨을 알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사람이 이로운 것을 얻을 때는 반드시 그 해로운 바를 생각하고, 성공을 즐거워할 때는 반드시 그 실패할 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학잡지 『애지』 가을호에 내 신작시 다섯 편이 실리며 평론가의 시인론이 따라 붙어 있습니다. 그걸 읽다가 인용한 내 시 중에 낯선 작품이 눈에 띄었지요. 내가 언제 이런 시를 썼던가? 남의 작품처럼 생소하기만 합니다.
시집을 뒤적여 찾아보니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에 실린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는 손을 가진 자를 위하여」라는 시입니다. 내가 낯설게 느꼈던 것은 평ㅇ론가가 작품의 앞머리를 뚝 떼어내고 뒷부분만 인용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그 작품을 다시 찾아 읽고 난 뒤 비로소 왜 그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때의 심리적 정황이 그려졌습니다. 이 시는 젊은 시인 기형도가 죽고 난 뒤 그의 죽음이 너무나 느닷없고 허망하고 슬퍼 썼던 것이지요. 그가 땅에 묻히던 날 장지에 따라가지 않았으나 상상으로 그를 묻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지요. 그중에 나도 슬쩍 끼워 넣었던 것이지요.
어느 날 아침 밥상을 받고 막 첫 숟갈을 뜨려는데 전화가 왔지요. 기형도가 새벽에 죽었다는 소식이었지요.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ㄱㅇ, 파고다 공원 옆의 한 심야극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지요. 그 불길한 전언이 기형도가 유포한 어두운 신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기형도는 살아 있는 동안에 시집 한 권도 못 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꼼꼼하게 첫 시집의 원고를 정리해 어깨에 메는 가방에 넣고 다녔지요. 그의 문학의 벗들과 친지들은 그 시들을 묶어 시집을 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유고시집이지요. 이 시집의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붙였지요. 그러나 그 역시 이 시집이 나온 이태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현은 시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우마르 하이암의 『루바이야트』의 한 구절을 빌려 그의 넋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아마도 이미 간경화가 상당히 진행된 터라 지병이 속수무책으로 깊어가는 속에서 천천히 그림자를 끌고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을 느낀 김현 자신에게 속삭이는 시였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어쨌든 기형도의 갑작스런 죽음에 놀라고 애도하는 마음속에서, 거기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뚜렷한 예감을 겹쳐 보며 이 해설을 썼을 김한의 마음의 무늬가 글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김현이 “나는 누가 r형ㄷ3ㅗ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고 썼을 때, 바로 자신이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진저리치며, 그 진저리치는 채 모습을 가여워한 것은 아닐까요. 그걸 남 얘기하듯 슬쩍 끼워 넣어 내면의 두려움을 엷게 하고, 더 나아가 제 내면에 가득 차 있는 죽음에 대한 슬픔을 애써 이겨내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지요.
생전의 기형도는 명랑하고(그 명랑함 속에 얼마나 많은 우울들이 서식하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글 잘 쓰고, 노래 잘하고, 매우 유능한 기자였지요. 더구나 그가 대학시절 내 초기시의 열렬한 독자였다는 사실을 수줍게 고백한 뒤 그와 나는 좀 더 사적이고 살가운 관계를 이어갔지요. 그는 문학기사를 쓸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의견을 물어왔고, 중언부언하는 내 얘기들이 그의 보석 같은 신문기사 속에 반짝이는 걸 보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그걸 잃었습니다. 그의 죽음도 애석하지만 그의 비범한 문학기사를 읽는 재미를 상실한 아픔도 작지 않지요.
죽은 기형도는 내 상상 속에서 이렇게 쓸쓸하고 아픈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따뜻한 거”, “살아 있는 거”를 주고 싶지만, 그의 손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은 기형도가 안성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는 것도 어떤 인연을 느끼게 하지요. 기형도는 자신이 사랑을 목발질하며(왜? 이 불구성은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 사랑으로 질주할 때 느껴지는 참담함의 은유일 것입니다) 살아왔다고 고백하지요. 그 반성은 “대보름달이여 /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라는 약간은 장난기가 섞인 청년다운 소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나이에 순결한 청년은 멋진 연애 한 번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떴지요. 저 세상에서 무슨 급한 볼일이 있었던가! 소설가 김훈은 비장한 어조로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라고 물었지요. 볕바른 가을 어느 날, 나는 들국화 한 묶음 들고 조용히 그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안성의 원삼 가는 길목에 자리한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묘역에 기형도 시인은 고요히 묻혀 있습니다. 평택대학교 앞에서 해장국집을 하는 민경환 시인이 준비해간 과일 몇 가지와 한과, 국화꽃다발을 놓고 이배하고, 술 한 잔을 컵에 따라 무덤 주변에 뿌렸습니다. 시인이 절할 때 김영미 씨와 옥은희 씨가 데려온 꼬맹이 셋도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 채 공손하게 이배 올렸습니다.
우리는 가을 볕 아래 사과를 쪼개 나눠 씹고 그걸 안주 삼아 술 두 병을 마저 비웠지요. 생전에 술 못 마시던 기형도 시인도 얼떨결에 받아 마신 두어 잔에 얼굴 불콰해진 채 가을 햇살에 하얗게 타오르는 억새라도 바라보고 있을 듯해, 나는 가슴이 아렸습니다. 무덤가 풀밭에 앉아 한 시간여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일어섰습니다. 아직 과일들에 단맛이 덜 배었는지, 사을 햇살ㄹ은 뜨겁게 퍼부어 내렸지요.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와 혼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눈 떠보니 세상은 어느덧 캄캄하고, 집은 자욱한 물안개 속에 묻혀 있었지요. 문득 삶의 이면이 만져지는 듯한 밤이 와서 나는 왠지 서럽고 누군가가 그리워졌습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을 연민으로 기리고 굳세고 단단한 것을 내놓고 경멸합니다. 생명의 본디 형용이 부드럽고 약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삶은 이미 그 안에 죽음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가 오고가는 세상입니다. 산 자가 죽음을 피할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살아 있음의 기쁨을 알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사람이 이로운 것을 얻을 때는 반드시 그 해로운 바를 생각하고, 성공을 즐거워할 때는 반드시 그 실패할 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학잡지 『애지』 가을호에 내 신작시 다섯 편이 실리며 평론가의 시인론이 따라 붙어 있습니다. 그걸 읽다가 인용한 내 시 중에 낯선 작품이 눈에 띄었지요. 내가 언제 이런 시를 썼던가? 남의 작품처럼 생소하기만 합니다.
비가 와,
꿈꿔라!
비는 머리카락을 적시고
이마로 흘러내린다.
꿈꿔라!
날렵한 고양이는 어디 있는가?
따뜻한 거!
살아 잇는 거!
꿈꿔라!
비는 머리카락을 적시고
이마로 흘러내린다.
꿈꿔라!
날렵한 고양이는 어디 있는가?
따뜻한 거!
살아 잇는 거!
시집을 뒤적여 찾아보니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에 실린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는 손을 가진 자를 위하여」라는 시입니다. 내가 낯설게 느꼈던 것은 평ㅇ론가가 작품의 앞머리를 뚝 떼어내고 뒷부분만 인용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그 작품을 다시 찾아 읽고 난 뒤 비로소 왜 그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때의 심리적 정황이 그려졌습니다. 이 시는 젊은 시인 기형도가 죽고 난 뒤 그의 죽음이 너무나 느닷없고 허망하고 슬퍼 썼던 것이지요. 그가 땅에 묻히던 날 장지에 따라가지 않았으나 상상으로 그를 묻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지요. 그중에 나도 슬쩍 끼워 넣었던 것이지요.
피가 굳으면 그는 아플 거야.
오. 그래 죽음은 딱딱한 거야.
오. 그래 죽음은 딱딱한 거야.
어느 날 아침 밥상을 받고 막 첫 숟갈을 뜨려는데 전화가 왔지요. 기형도가 새벽에 죽었다는 소식이었지요.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ㄱㅇ, 파고다 공원 옆의 한 심야극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지요. 그 불길한 전언이 기형도가 유포한 어두운 신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기형도는 살아 있는 동안에 시집 한 권도 못 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꼼꼼하게 첫 시집의 원고를 정리해 어깨에 메는 가방에 넣고 다녔지요. 그의 문학의 벗들과 친지들은 그 시들을 묶어 시집을 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유고시집이지요. 이 시집의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붙였지요. 그러나 그 역시 이 시집이 나온 이태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현은 시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우마르 하이암의 『루바이야트』의 한 구절을 빌려 그의 넋을 달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오고 가는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
묻는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
묻는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이 시는 아마도 이미 간경화가 상당히 진행된 터라 지병이 속수무책으로 깊어가는 속에서 천천히 그림자를 끌고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을 느낀 김현 자신에게 속삭이는 시였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어쨌든 기형도의 갑작스런 죽음에 놀라고 애도하는 마음속에서, 거기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뚜렷한 예감을 겹쳐 보며 이 해설을 썼을 김한의 마음의 무늬가 글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김현이 “나는 누가 r형ㄷ3ㅗ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고 썼을 때, 바로 자신이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진저리치며, 그 진저리치는 채 모습을 가여워한 것은 아닐까요. 그걸 남 얘기하듯 슬쩍 끼워 넣어 내면의 두려움을 엷게 하고, 더 나아가 제 내면에 가득 차 있는 죽음에 대한 슬픔을 애써 이겨내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지요.
생전의 기형도는 명랑하고(그 명랑함 속에 얼마나 많은 우울들이 서식하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글 잘 쓰고, 노래 잘하고, 매우 유능한 기자였지요. 더구나 그가 대학시절 내 초기시의 열렬한 독자였다는 사실을 수줍게 고백한 뒤 그와 나는 좀 더 사적이고 살가운 관계를 이어갔지요. 그는 문학기사를 쓸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의견을 물어왔고, 중언부언하는 내 얘기들이 그의 보석 같은 신문기사 속에 반짝이는 걸 보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그걸 잃었습니다. 그의 죽음도 애석하지만 그의 비범한 문학기사를 읽는 재미를 상실한 아픔도 작지 않지요.
그는 아마도 추울 거야.
그는 큰곰별자리를 보지 못하지.
그는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는 손을 가졌지.
그는 큰곰별자리를 보지 못하지.
그는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는 손을 가졌지.
죽은 기형도는 내 상상 속에서 이렇게 쓸쓸하고 아픈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따뜻한 거”, “살아 있는 거”를 주고 싶지만, 그의 손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은 기형도가 안성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는 것도 어떤 인연을 느끼게 하지요. 기형도는 자신이 사랑을 목발질하며(왜? 이 불구성은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 사랑으로 질주할 때 느껴지는 참담함의 은유일 것입니다) 살아왔다고 고백하지요. 그 반성은 “대보름달이여 /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라는 약간은 장난기가 섞인 청년다운 소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나이에 순결한 청년은 멋진 연애 한 번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떴지요. 저 세상에서 무슨 급한 볼일이 있었던가! 소설가 김훈은 비장한 어조로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라고 물었지요. 볕바른 가을 어느 날, 나는 들국화 한 묶음 들고 조용히 그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안성의 원삼 가는 길목에 자리한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묘역에 기형도 시인은 고요히 묻혀 있습니다. 평택대학교 앞에서 해장국집을 하는 민경환 시인이 준비해간 과일 몇 가지와 한과, 국화꽃다발을 놓고 이배하고, 술 한 잔을 컵에 따라 무덤 주변에 뿌렸습니다. 시인이 절할 때 김영미 씨와 옥은희 씨가 데려온 꼬맹이 셋도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 채 공손하게 이배 올렸습니다.
우리는 가을 볕 아래 사과를 쪼개 나눠 씹고 그걸 안주 삼아 술 두 병을 마저 비웠지요. 생전에 술 못 마시던 기형도 시인도 얼떨결에 받아 마신 두어 잔에 얼굴 불콰해진 채 가을 햇살에 하얗게 타오르는 억새라도 바라보고 있을 듯해, 나는 가슴이 아렸습니다. 무덤가 풀밭에 앉아 한 시간여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일어섰습니다. 아직 과일들에 단맛이 덜 배었는지, 사을 햇살ㄹ은 뜨겁게 퍼부어 내렸지요.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와 혼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눈 떠보니 세상은 어느덧 캄캄하고, 집은 자욱한 물안개 속에 묻혀 있었지요. 문득 삶의 이면이 만져지는 듯한 밤이 와서 나는 왠지 서럽고 누군가가 그리워졌습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
수혜안나 2022.05.30. 06:59
요즘은 새벽 5시 알람소리에 일어나 곧바로 호숫가로 나가 걷습니다
들어와 잠시 머리 말리는 동안 글 한편 담고 싶어 만난 글에서
이렇듯 뜻밖의 희열을 맛보고 앉았습니다
아! 살아있음이여, 찬미하여라! 하면서 말이죠
기형도님의 애절함과 함께
어느 별 평화로운 곳에서
다음을 준비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걷는 동안 빗방울이 뿌려져
땅바닥과 제 옷에 데칼코마니처럼
그림으로 남겨진 빗방울 자국들을 보면서
미소 안에 머물기도 했지요
아~ 이쁘다! 하면서요
이만하면, 너무 아름다운 세상인 거죠
모두들 이 멋진 세상에서 축복과 늘 함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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