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모두 불꽃을 가지고 있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말을 통하는 누군가가 앞에 있는 것처럼 나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하듯 고양이에게 말을 건넸다.
“삶은 모두 불꽃을 가지고 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정확하게 말하면 나로부터 3m 정도 떨어진 곳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길고양이는 묶이지 않았지만 묶인 것같이 부자유스러운 자세였다. 검은 고양이이지만 입고 있는 옷을 털이 빠지고 때가 묻어 병든 모습이 역력했다. 조금 더 다가가면 도망갈 것 같아 나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그 한 줄이었다. 지금 상처받아 고통 속에 있다 해도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거나 설령 그 순간이 지났다 해도 삶이 가지고 있는 불꽃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알아듣지도 못할 고양이한테 그렇게 넋두리하듯 이야기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고양이에게 나는 내 심정을 투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병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렇게 무슨 말이라도 하며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양이 눈이 젖어 있다고 느낀 것 또한 내 마음이 젖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를 보내고, 오래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던 나는 그때 강 위를 스쳐 가는 바람같이 마음이 흠뻑 물기를 머금고 있었던 모양이다.
겨울을 나야 할 목련나무가 어둠 속에 서 있다. 강원도 산골엔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한다. 겨울이 오는구나. 반쯤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탄식하듯 내뱉는다. 먼 산에 내리는 눈을 생각하면 가슴이 덜커덩 소리를 낸다. 내리는 눈 속을 걸어가든 누군가를 생각하면 바람에 문이 닫히듯 가슴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고양이는 어렵게 일어나 힘들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지는 녀석을 눈으로 따라가다 나는 허공에 희끗 눈발이 날리는 걸 본다. 아니다. 그것도 착각일지 모른다. 자꾸 헛것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야기하느라 먹을 걸 주지 못했구나. 뒤늦은 후회가 털 빠진 고양이의 빛바랜 외투처럼 구차하다. 고양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 건 아마도 나 혼자 꾸는 꿈같은 것이리라.
수많은 착각과 변명 속에 인생이 간다. 더럽고 탈색한 옷을 입고 있는 고양이처럼 내게도 언젠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인생은 무심한 날이 있는가 하면 눈물 흐르는 날도 있다. 눈물 흐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날도 있다.
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노모를 병간호하던 시절,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번들쇠’라는 모임을 만들자는 내용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댓글을 단 사람 중엔 나처럼 병든 노모를 모시며 힘들어하는 이가 또 있었다. 번들쇠, ‘번개 치는 날 들판에 쇠붙이 가슴에 달고 서 있자’는 말을 줄여서 만든 이름이다. ‘불꽃처럼 살다가 번개처럼 가자’는 번들쇠의 구호였다.
그렇게 살다 가면 좋겠다. 누군가에 의지해 구차한 목숨 이어가지 말고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단숨에 꺼져버린 인생이라면 좋겠다. 북받쳐 오르는 날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전류는 저항이 있기에 열을 내고, 인생의 모든 길은 아픔을 지나가야 새로운 길과 연결된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생은 깜깜하지만, 세상의 모든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어 견딜 수 있다.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
“삶은 모두 불꽃을 가지고 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정확하게 말하면 나로부터 3m 정도 떨어진 곳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길고양이는 묶이지 않았지만 묶인 것같이 부자유스러운 자세였다. 검은 고양이이지만 입고 있는 옷을 털이 빠지고 때가 묻어 병든 모습이 역력했다. 조금 더 다가가면 도망갈 것 같아 나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그 한 줄이었다. 지금 상처받아 고통 속에 있다 해도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거나 설령 그 순간이 지났다 해도 삶이 가지고 있는 불꽃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알아듣지도 못할 고양이한테 그렇게 넋두리하듯 이야기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고양이에게 나는 내 심정을 투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병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렇게 무슨 말이라도 하며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양이 눈이 젖어 있다고 느낀 것 또한 내 마음이 젖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를 보내고, 오래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던 나는 그때 강 위를 스쳐 가는 바람같이 마음이 흠뻑 물기를 머금고 있었던 모양이다.
겨울을 나야 할 목련나무가 어둠 속에 서 있다. 강원도 산골엔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한다. 겨울이 오는구나. 반쯤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탄식하듯 내뱉는다. 먼 산에 내리는 눈을 생각하면 가슴이 덜커덩 소리를 낸다. 내리는 눈 속을 걸어가든 누군가를 생각하면 바람에 문이 닫히듯 가슴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고양이는 어렵게 일어나 힘들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지는 녀석을 눈으로 따라가다 나는 허공에 희끗 눈발이 날리는 걸 본다. 아니다. 그것도 착각일지 모른다. 자꾸 헛것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야기하느라 먹을 걸 주지 못했구나. 뒤늦은 후회가 털 빠진 고양이의 빛바랜 외투처럼 구차하다. 고양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 건 아마도 나 혼자 꾸는 꿈같은 것이리라.
수많은 착각과 변명 속에 인생이 간다. 더럽고 탈색한 옷을 입고 있는 고양이처럼 내게도 언젠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인생은 무심한 날이 있는가 하면 눈물 흐르는 날도 있다. 눈물 흐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날도 있다.
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노모를 병간호하던 시절,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번들쇠’라는 모임을 만들자는 내용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댓글을 단 사람 중엔 나처럼 병든 노모를 모시며 힘들어하는 이가 또 있었다. 번들쇠, ‘번개 치는 날 들판에 쇠붙이 가슴에 달고 서 있자’는 말을 줄여서 만든 이름이다. ‘불꽃처럼 살다가 번개처럼 가자’는 번들쇠의 구호였다.
그렇게 살다 가면 좋겠다. 누군가에 의지해 구차한 목숨 이어가지 말고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단숨에 꺼져버린 인생이라면 좋겠다. 북받쳐 오르는 날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전류는 저항이 있기에 열을 내고, 인생의 모든 길은 아픔을 지나가야 새로운 길과 연결된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생은 깜깜하지만, 세상의 모든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어 견딜 수 있다.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