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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벼룩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오작교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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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와 진품은 큰 차이가 없다. 쓰레기인지 진품인지는 대상을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잣대에 의해 달라질 뿐 고유의 가치란 어떤 것에도 없다. 모든 것이 화폐의 크기로 환산되는 세상에선 큰 것만이 진품이 된다. 도난당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 23년 만에 쓰레기봉투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클림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그림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진품은 당신 눈앞에도 널려 있다.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

   가령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1,000억 원에 거래되었다면 전시회장을 찾은 당신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마 1,000억 원만큼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심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끝내 의미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1,000억 원이라는 액수의 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우리의 현실이 아니듯 가치란 결국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결정되는 어떤 것이다. 1,000억 원이란 액수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잇는 현실 세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1,000억 원의 근거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이들의 판단과 평가에 의지한다. 마치 1,000억 원의 가치를 경험이라도 해본 듯 대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림의 가치를 액수로 결정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해놓은 규격에 맞추어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 아니라 그림값을 감상한다. “천문학적인 가격이다. 1,000억 원이나 하네” 하며 혼자서는 계산이 안 되던 그림의 가치를 수자의 크기만으로 단번에 납득하는 것이다.

   진실한 예술의 세계엔 그러나 1,000억 원짜리란 없다. 그것은 단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숫자일 뿐 우리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예술이란 숫자와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희망이나 꿈같은 것이다. 그것은 화폐가 가리키는 유형의 재산 같은 것이 아니라 절대적 내면의 공간에 세워진 환상 같은 것이다.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섰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결코 1,000억 원이라는 작품의 가격 때문이 아니다. 그림을 설명하는 큐레이터 대신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위한 상담사가 필요하다는 로스코의 작품은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의 인생을 넘어온 영성적인 한 존재가 빚어낸 혼의 울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숫자 때문에 우는 사람은 없다. 숫자는 결코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다. 생전의 로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감정이 분출해 눈물을 흘린다면, 그 순간이 바로 그림을 매개로 그와 내가 소통하는 순간”이라고.

   그림이 팔리지 않아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짓는 화가를 안다. 아니, 내가 모를 뿐 그런 화가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작품만을 팔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당한 치욕과 모멸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이중섭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며 평생 고통의 세월을 살았던 예술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술은 그렇게 조건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사람들은 가버린 이들의 예술에 열광하는가? 그런 열광이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다. 어둠의 세월을 살다가 간 그들에 비해 살아생전 빛을 보는 예술가 또한 없지는 않다. 그중엔 그림보다 정치를 잘해 지위를 얻고 명성을 얻는, 무늬만 예술가인 사람 또한 많다.

   그림뿐만이 아니라 문학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쓰레기에 상을 주면 사람들은 그것이 명품인 양 착각한다. 예술에서 상이란 인격을 가진 존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격이란 믿을 수가 없어서 가치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 없다. 그러니 예술에 대해 상을 준다는 것은 예술의 순수성을 모독하는 일이 되기 쉽다. 상을 주려면 풀이나 꽃이나 나무에게 주라.
 
세상 모든 귀뚜라미에게
상 주고 싶다. 그들은 시인이니까.
노랗게 깔린 은행잎에 발목 맡긴 채
암나무 수나무를 척 보면 아는
눈 맑은 수자(受者)에게 상 주고 싶다
그들은 시인이니까. 
엄동의 벌판을 고독하게 건너가던
사라진 늑대에게 살 주고 싶다
그들은 시인이니까.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견디는
욕심 없는 사람들에게 상 주고 싶다
그들은 더 잃을 것 없으니까.
누대(累代)의 슬픔이야 둥근 테로 새기며
다 벗어서 가벼운 나목에게 상 주고 싶다
그들은 아무것도 쌓아두지 않을 테니까.
                   김재진, <상 받는 사람>

 

 

살아서 영광을 누리는 예술가들이여, 가끔은 미안한 줄 좀 알라. 당신의 영광을 위해 소도구가 된 풀과 꽃과 나무, 그리고 동료 예술가들에게 감사할 줄 좀 알라. 당신의 그 대단한 작품들은 수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이 창조해낸 공동 저작물이지 당신 혼자의 것이 아니다. 세상의 눈길을 끄는 그 높은 가격을 지우고 나면 보는 이의 눈길 또한 따라서 지워지는 당신의 작품은 예술품이 아니라 잘 팔리는 상품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가격으로 그림을 구입하는 구매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부유한 이들의 눈요깃거리나 값비싼 인테리어로 쓰려고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 로스코는 그곳에 자신의 그림이 전시되는 것을 단연코 거부했다. 저명한 예술가들이여, 찬란한 영광과 몸값이 자본주의의 미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한 번쯤은 인지하라. 신을 찬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자체로 천사들 중 최고인 것보다 
신의 벼룩 중 어느 하나가 더 고귀하다.
               마이스터 예크하르트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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