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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우선순위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오작교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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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흥미로운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먼저 백지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열 명쯤 적도록 한다.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배우자와 자식들부터 적는다. 그다음에 부모나 형제, 그러고도 열 명이라는 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빈칸이 남으면 그다음 순서로 지인을 적는다. 대략 이렇게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적어놓은 명단을 살펴본 뒤 이번엔 갑자기 전쟁이 터졌다고 가정하도록 한다. 아무리 상상이라 해도 전쟁이란 단어에 사람들은 잠깐 긴장하는 기색을 보인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 뒤, 그다음 순서로 곧 적의 손아귀에 들어갈 이 땅을 탈출할 수 있는 항공기 탑승권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물론 상상 속의 탑승권이다. 이 탑승권을 끝으로 더 이상 탈출한 기회는 없다. 각자 자기 몫의 마지막 탑승권을 받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몫의 탑승권이 세 장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공평하게 세 장씩만 나누어준 것이다. 탑승권이 없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항공기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방금 적어놓은 열 명의 사랑하는 사람 명단 중에서 탑승권을 배당할 세 명을 고르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열 명 중 세 명만 탈출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셋 중 자기 자신을 끼워 넣은 것도 가능하다. 자기까지 포함해서 세 장인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를 빼놓는다면 탈출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을 포함해 가족이 세 사람뿐이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자식이나 배우자가 우선이지 부모님께 돌아갈 탑승권은 없다. 살 만큼 살았는데 어쩌겠나 하며 체념하는 건 부모님 쪽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부모님 중 한 분을 항공기에 태우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나 또한 그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부모님이 안 계시니 지극한 나의 효심은 가식일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명단에서 나 자신을 제외해도 탑승권이 부족한 경우다. 자시기 셋이나 넷만 돼도 문제가 생긴다. 자식을 제외해야 할지 배우자를 제외해야 할지도 문제이며, 자식들만 보내는 것도 문제가 된다. 자기 자신을 내던졌음에도 사랑하는 사람 중 누군가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과 마주치는 순간 사람들은 좌절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무력감에 빠진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국민을 해외로 탈출하게 만든 위정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기본이다. 나쁜 놈들이다. 자기들은 전용기로 이미 가족과 함께 다 탈출하고 없으니.

   우리에겐 나를 내던져서라도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꼭 위기에서 구해내고 싶은 대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 대상을 향한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그렇게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테스트는 여기서 다시 한번 감정적 반전을 겪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나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구하고 싶은 사람 중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번엔 그 사람 입장에서 나를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목숨을 걸고 구하려 한 그 사람은 과연 위기의 순간에 나를 먼저 구하려 할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노부모를 버리면서까지 비행기에 태우려 한 자식이나 배우자는 과연 세 장 밖에 없는 탑승권을 나에게 배당할까?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경우는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상대를 향해 무조건적 사랑을 베푼 나의 감정은 모순과 부딪친다. 때로는 사람의 감정 사이로 미묘한 저항의 에너지가 흐를 수도 있다. 내가 모든 걸 제쳐놓고 사랑한 사람에게 정작 나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배신감에 휩싸일 수도 있다. 대부분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 아버지인 나는 그 사실이 전혀 억울하지 않다. 가끔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대상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랑한다는 믿음은 착각일 뿐 혹시 내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이가 그 사람이거나, 그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이 나인 것은 아닐까?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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