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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고 말설이다다 놓쳐버리는 것들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

오작교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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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하나 고르는 데 몇십 분을 허비하고, 치즈 하나 고르는 데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신발 한 켤레 고르는 데 페이스북이나 카톡 친구들의 안목까지 동원하며 우리는 힘겹게 쇼핑한다. 그렇게 심사숙고한 결과물에 대해서도 안심하지 못해 물건을 산 뒤에도 이리저리 구매 후기를 검색하는 현대인들.

   철학자 레타나 살레츨(Renata Salecl)은 이렇게 ‘합리적인 선택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탐구한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그녀는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믿음이 얼마나 빈약한 환상 위에 축조된 것인지를 해부한다. ‘내 삶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내가 지난날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죄책감이야말로 무엇이든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의 비극적인 결과물이다.

   신속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행동은 ‘쓸모없는 낭비’로 전락한다. ‘당신의 삶에 가장 어울리는 자동차를, 커피를, 심지어 집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우물쭈물하고 있냐’는 식의 광고를 볼 때마다. 좌절한다. 누가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못 하느냐 말이다.

   우리에게는 입맛대로, 기분대로, 내 열망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선택할 만한 여유가 없다. 1퍼센트의 기득권층도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또한 ‘혹시 더 좋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삶의 중요한 것들을 얼마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제도와 광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불운이 내 잘못된 선택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빠진다.

   ‘당신의 모든 삶은 당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뒤에 숨은 환상, 그 뒤에는 더욱 무서운 베일이 깔려 있다. 우리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우리 삶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강자들의 시스템에 길들여지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라는 식의 믿음 때문에 사회는 불의를 무릅쓰고 굴러간다. 이 사회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상상되는 순간, 우리는 ‘개인의 선택만이 가능하고, 사회의 선택은 불가능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로 바꿔야 할 것은 바로 그 사회인데 말이다.

   사실 어떤 선택도 진정으로 개인적이지 않다. 우리는 무심코 옷과 신발과 라면과 커피를 고르지만, 그 선택 뒤에는 더 ‘광고가 많이 되는 브랜드’, 더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이것이 대세야, 이것이 유행이야’라고 회자되는 사회의 분위기가 버티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선택들 대부분이 사회적 영향력 안에서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과 싸워야 한다.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테를 마실지 마키아토를 마실지 고민하는 동안, 개인의 소비를 통한 선택이 아니라 좀 더 공동체적인 문제에 눈을 돌려보면 안 될까. 커피의 종류를, 점심 메뉴를, 구두 브랜드를 바꾸는 선택으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놓은 가치를 다시 선택해야 하고, 최상의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가장 나쁜 정치인을 낙선시키는’ 선택이라도 해야 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을 깨우치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상품을 소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사회의 제도와 생활의 습관을 바꾸는 진정한 공동체적 선택을 꿈꾸어야 한다.

   소비로 귀결되는 선택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머무는 장소와 시간의 빛깔을 바꾸는 선택, 내 취향만 만족시키는 쇼핑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글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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