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계 속에는 누가 사나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는 여행을 할 때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시계를 사곤 한다. 외국의 벼룩시장이나 옥션에서 값이 싸고 디자인인 독특한 엔티크 시계를 두어 개 사기도 했다. 그래서 수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각기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시계들이 집 안에 놓여 있다.
그 시계들 속에서는 왠지 시간도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거나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일산의 시간과는 무언가 다른 시간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낯선 시계에 관한 관심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볼 때마다 그것을 사던 장소와 시간뿐 아니라 그 시계가 거쳐왔을 수많은 사람의 삶을 떠올려보곤 한다. 신기하게도 시계들은 똑같이 맞추어 놓아도 얼마 지나서 보면 꼭 몇 분씩 차이가 난다. 어떤 시계는 조금 빠르고, 어떤 시계는 조금 늦다. 이렇게 집 안의 시계들이 조금씩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마음에 든다.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괘종시계도 있다. 1900년대 초에 참나무로 만들어진, 1미터 남짓한 높이의 스탠드형 괘종시계. ‘거의’라고 한 것은 평소에 멈춰 있다가도 이따금 손으로 건드리면 갑자기 분침이 움직이면서 차임벨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괘종시계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 듯 째깍거리며 ‘아 참, 내가 시계였지!’ 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시계를 어찌 죽었다고 단정할 수 있으랴.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멈추긴 하지만, 수시로 깨었다 잠들었다 하는 이 시계가 나는 마음에 든다.
이 고물 시계가 이삿짐에 끼어 바다 건너 광주로 건너오기까지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을 따라 런던 근교의 옥션에 가보았다. 옥션에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들이 많았고, 옛 물건 보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더러 현대 미술작품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의 경매품은 오랜 세월의 때를 입은 물건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진작 고물상에서 폐기되었을 물건들이 유럽의 벼룩시장이나 옥션에서는 아직 몸값을 제법 받고 있었다. 최소한 오십 년 이상은 된 물건들이 내뿜는 묵은내를 맡고 있자니 이상한 향수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은 경매가 열리지 않는 날이라 물건번호를 적은 입찰신청서를 남겨두고 올 수 있었다. 나도 소품 몇 가지를 아주 낮은 가격으로 써놓고 돌아왔다. 도저히 그 가격에는 낙찰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에 전화가 걸려 왔다. 그날 내가 써놓고 온 물건 중 괘종시계가 낙찰되었으니 가져가라는 통보였다. 만일 가져가지 않으면 법적인 절차를 밟아 보관료와 소송비용까지 물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쓴 가격을 물었더니 35파운드, 5만 원 정도였다. 할 수 없이 봉고차를 가진 이웃의 도움을 받아, 돈을 지불하고 문제의 괘종시계를 실어 왔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고색창연한 차임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시계가 아니라 골동 악기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좁은 거실에 시커멓고 커다란 괘종시계를 가져다 놓으니 그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한식구가 된 시계를 정성껏 닦고 자세히 살펴보니 괜찮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FOREIGN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졌나 보다. 외제의 외제라니……. 하여튼 국적을 알 수 없는 먼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이 그 시계의 연원을 좀 더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다.
심미적인 면에서도 장인의 정성과 감각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몸체의 목질이 단단해서 한 세기 넘는 세월을 견딜 수 있었겠구나 싶었고, 공명통 역할을 하기에도 적합한 재질이었다. 시계 판 아래 새겨넣은 꽃장식과 모서리를 다듬은 솜씨도 정교했다. 금속으로 된 시계 판은 때가 끼고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많았지만, 그 또한 시계의 연륜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초침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하다. 하기야 백여 년 전에는 초를 다투어 살 만큼 삶이 각박하지 않았을 테니 초침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고정핀이 빠져 자꾸 떨어져 내리는 분침을 꾹 눌러 붙이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날로그 시계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막상 시계를 작동시키려고 하니 결정적으로 태엽을 감는 열쇠가 없었다. 금속으로 된 네모난 시계 판에 세 개의 구멍이 있는데, 거기에 열쇠를 넣고 태엽을 감아야 시계가 돌아가는데 말이다. 옥션에서 물건을 건네받을 때 열쇠를 미처 챙겨오지 못한 것이다. 나는 골동 시계를 모으는 지인의 집을 방문해 여러 개의 열쇠를 빌려왔다. 다행히 그중 크기가 맞는 열쇠가 있어서 세 개의 태엽을 최대한 감아두었다.
드디어! 시곗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침과 시침의 주기는 잘 맞는 편이었고, 차임벨 소리와 괘종소리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분침의 속도였다. 이 분침이 돌아가는 속도는 일반적인 초점보다는 느리고 일반적인 분침보다는 빨랐다. 분침이 3과 6과 9와 12라는 숫자를 지날 때마다 울리는 차임벨 소리가 15분이 아니라 몇 분 간격으로 들렸다. 마치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을 벌충하기라도 하듯이 분침은 조급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독자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가 있다니! 이 속도는 대체 누가 정한 것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 아니면 괘종시계 속에 누군가 사는 것일까.
시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시계 뒤판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몇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시침과 분침을 잇고, 그것은 다시 차임벨을 울리는 긴 금속 막대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르골을 축소해놓은 듯한 괘종시계의 내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수리하기에는 공학적 지식이나 기술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커다란 시계를 끌고 수리점에 찾아간들 구식 시계를 제대로 고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싶었다. “대상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라는 영화 대사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시계를 사랑하는 일밖에 없었다.
연구년을 마치고 배편으로 이삿짐을 부치면서 이 고장난 시계를 버리지 않은 것은 몇 달 남짓 정이 들어서였다. 식구들은 짐을 하나라고 줄여야 할 판에 고물을 왜 가지고 가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이 시계는 고장난 게 아니라 독특한 존재 방식을 지닌 사물’이라고 우겨댔다. 현재의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은 잃어버렸어도 어떤 물건이 백 년을 넘겼다면 거기엔 영혼 같은 게 깃들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신비를 해독해나가야 할 의무가 시인인 나에게는 있다고, 언젠가 이 알 수 없는 시계에 대해 한 편의 시를 쓰게 될 거라고.
광주의 집에 옮겨온 후에도 이 괘종시계는 여기 놓였다 저기 놓였다 어울리는 자리를 쉽게 찾지 못했다. 처음엔 이 늙은 시계를 서재 앞 복도에 문지기처럼 세워두었다.
서재로 들어갈 때마다 그는 중세의 수도사처럼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이다. 동양권에는 비슷한 말로 화무십일홍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이국의 손님에게 남도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햇빛에 시계의 작은 상처까지 다 드러났지만, 시계 판 유리에 얼비친 화분이며 창밖의 나무들로 시계의 표정은 한결 밝고 온화해졌다.
한동안 그럭저럭 가는 듯하다가 결국 멈춰버린 괘종시계가 지금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순간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심심하면 손가락으로 바늘을 움직여 시간대를 바꾸어놓기도 하지만, 이 시간에 맞추어 둔 것은 내가 잠자리에 들 무렵이라서다. 내가 잠을 자듯이 그 시계도 잠을 자는 것뿐이다. 자기 건에 “잘 자!” 하면서 시계 몸통을 툭 치면, 멈춰 있던 분침이 깜짝 놀라 째깍째깍 돌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두 바퀴 돌다가 시계는 스르르 멈춘다. 어떤 진동이 그를 다시 깨울 때까지 시계는 자신이 시계임을 잊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상한 시계들
세상에는 이렇게 조금씩 틀리거나 어딘가 이상한 시계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시계는 정확하다'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시계로 대변되는 근대적 시간관에 대해 공연히 딴지를 걸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인간이 시간을 일정한 길이로 쪼개고 시, 분, 초의 단위를 만들어낸 것은 대단한 발견 중 하나다. 게다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시곗바늘은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다는 진리를 위리에게 순간순간 일깨워준다. 하지만 시계라는 사물을 너무 기능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표준적인 시계를 한 켠에는 그 규범을 이탈하기 좋아하는 시계들도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면 된다.
언젠가 강진 읍내의 한 식당에서 본 벽시계는 얼마나 큰지 초침 길이가 어른 팔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런데 바늘들을 묶고 있는 연결 부분이 매끄럽지 않아서인지 초침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불규칙했다. 얼마간 멈추었다 멀리뛰기 하듯 쑤욱 움직이는 초침의 보폭은 시간의 균질성이라는 말을 무색케 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60초에 한 바퀴를 정확히 돌기 때문에 그럭저럭 시계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이나 풍물을 통해 보고 들은 얘기까지 보태자면, 이상한 시계들의 목록은 상당히 많아진다. 구스타프 융은 <인간과 상징>에서 무생물이나 사물까지도 무의식과 상호 협력한다고 보았다. 시계까 주인의 죽음과 때를 같이해 멎어버리는 경우도 그런 예이다. 실제로 상 수시의 프레데릭 대제가 임종하는 순간 궁전의 추시계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누군가 죽는 순간 그의 거울이 깨어진다거나 사진틀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 정서적인 위기를 맞는 순간 집 안에 있는 어떤 물건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깨어지는 일 등도 융은 무의식이 사물에 미치는 영향으로 설명한다.
그 비슷한 일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오래전 고인이 되신 이광웅 시인이 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하셨을 때 그분의 머리맡에 있던 탁상시계가 멈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죽음을 향한 공포와 고통을 견디기 위해 그 작은 시계를 붙잡고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이때 시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그분이 맞서 싸우던 시간의 상징형식에 가깝다. 어떤 사물이든 마음을 깊게 쏱으면 그 염력이 기계에도 미친다는 융의 견해를 나는 지지하는 쪽이다.
시계와 죽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터키의 돌마바효체 궁전에 걸려 있던 이타튀르크의 시계도 떠오른다.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타튀르크가 임종한 시간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이었다. 집무를 시작할 무렵 심장마비로 죽은 그를 기리기 위해 궁전의 시계는 9시 5분으로 고정되어 있다. 팔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날 이 시간이 되면 국민 전체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1분 동안 묵념을 한다고 들었다. 이 시계의 역할은 현재의 시각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한 시점을 기리는 데 있다.
시계는 시간의 상징형식인 동시에 실제로 우리의 시간을 매순간 지배한다.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계는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며 일과를 지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삶의 주체가 되어 사는 게 아니라 시계가 이끄는 대로 분주하게 뛰어나니다가 하루가 지나가고 만다. 몇시에 약속, 몇시에 회의, 몇시에 강의……. 그 숫자들 속에 갇혀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일생이 자나갈 것이다.
이 새로운 지배자로부터 놓여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식를 멈추거나 풀어두어야 한다. 로제 폴 드루아는 <사물들과 철학하기>에서 사람이 시계를 풀어놓은 때는 "사랑을 할 때, 물에 들어갈 때, 잠을 잘때"라고 말했다. 이때만큼은 시간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내가 고장난 괘종시계를 좋아하는 것도 그 시계가 째까거리며 무언가 하라고 독촉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튼으로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디지털 시계들 속에서 이 낡은 아날로그 시계는 전혀 다른 시간의 터전을 내어준다. 그 속에서 쉬고, 놀고, 상상하고, 생각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시곗바늘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렇게 보면 이 고장난 괘종시계는 참으로 시적인 사물이 아닐 수 없다.
글 출처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나희덕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