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 / 아버지의 뒷모습
자동차를 처음 탄 곳은 굴비의 본향 영광 법성이었다. 닭이 홰를 치고 목청을 길게 빼던 새벽이었다. “귀신도 자기 무덤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라며 선친은 나를 깨웠다. 눈을 비비고 고양이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법성포 시장 구결을 따라나섰다.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되던 다음 해였다. 나는 초등 3학년까지 버스를 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소달구지를 타 본 것이 전부였다. 부스럼에 림프샘이 부어오른 아들을 데리고 의원을 찾아가던 날은 법성 장날이었다. 이슬에 처진 풀잎이 땅에 닿을락 말락 하던 새벽길로 나셨다. 사십 리 길을 걸어 나선 아버지는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셨다. 신작로에서 산길과 논밭 사잇길을 넘나들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걷다가 뛰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다가 차츰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미명의 산속 짚으로 씌워둔 초분에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해리면에서 출발하여 상하, 홍농면을 거치면서 새벽이슬에 젖은 검정 고무신은 빠각빠각 맹꽁이 소리를 냈다. 발이 시리다는 투정에 등을 내주시던 아버지는 신작로가 나타나면 내려놓고 업기를 반복했다.
아침밥 짓는 연돌 연기가 나던 의원 집에 도착했다. 따스한 큰 손으로 찬 손목을 잡은 의원은 연신 고개만 흔들어 댔다. 조제해 준 약봉지를 들고나오니 해가 떠올랐다. 홍농에서 법성으로 들어가던 경계였던 강나루는 다리 공사 중이었다. 강둑을 향하던 선친은 다리가 아프다는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리 공사가 무사하도록 가난한 처녀를 토관 속에 넣어 용왕에게 바쳤다는 내용이었다. 강둑에 다다르니 섶다리 아래 강물에서 죽은 처녀 귀신이 불쑥 올라올 것만 같았다. 누런 강물이 흐르던 섶다리, 아버지 등짝에서 누나에게 들은 심청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 건어 산등성이에 오르니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거대한 법성포구가 다가왔다. 동호항에서 소금 운반 중선 한두 척만 보던 때였다. 포구에는 중선보다 더 큰 어선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이 정박하여 있었다. 나는 항구 가득한 뱃줄에 펄럭이던 오색기를 세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끝없이 이어진 장터에는 조기와 장대, 장어, 박대 등 가게마다 생선이 가득하였다.
비릿한 냄새, 질퍽한 시장통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끼리 부딪쳤다. 항구에서도 찰랑거리던 파도 소리와 어선끼리 부대끼는 ‘삐걱’ 소리까지 들려왔다. 쪼그려 흥정하는 장꾼들로 붐볐다. 몇 시간을 걸어온 터라 재가 잔뜩 고팠다. 터미널 앞 국밥집 가마솥 끊는 물속에 잠긴 돼지머리는 천장을 향해서 웃고 있었다.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되를 주문하신 아버지는 허름한 구석 탁자에서 백색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고 마주 앉았다. 탁자에 펼쳐진 안주로 막걸리를 비우신 아버지는 풀치를 발라주셨다. 뚝배기에 내장과 순대를 수북하게 담은 국밥이 나왔다. 막걸리를 마신 아버지는 뚝배기를 내 앞으로 밀며 “어서 먹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순식간에 뚝배기 국밥 한 그릇은 깨끗하게 비웠다.
생기를 되찾아 난생처음 올라탄 버스 안은 장꾼들로 빈 좌석이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석 옆 엔진 뚜껑에 나를 앉혔다. 궁둥이로 전해지던 따끈함에 기분도 좋아졌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버스는 성냥곽처럼 사람과 짐으로 가득 채워졌다. 숨 막힐 듯 조여 오던 공간에는 장짐에서 풍기는 생선과 디젤 기름 냄새가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순댓국밥의 여운이 남아 있던 입 안이 하수구가 되었다. 되돌아 나온 토사물과 구역질 소리에 승객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엔진 뚜껑과 좌석 틈으로 흘러내리던 오물을 아버지는 두 손으로 쓸어 담아 퍼냈다. 출발이 지연된 버스 기사에게 아버지는 사과하였다. 기사가 내준 신문으로 바닥을 닦고 남은 물기 제거를 위해 신문을 깔았다.
약봉지를 들고 어쩔 줄 모르던 나에게 장군 한 사람이 좌석을 양보했다 아버지 품에 안겼으나 역한 냄새로 속이 계속 울렁거려 눈을 감았다. ‘토할 줄 알았으면 아버지나 드시게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창피스러운 그날 기억 때문에 순대국밥은 꺼린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되던 다음 해였다. 나는 초등 3학년까지 버스를 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소달구지를 타 본 것이 전부였다. 부스럼에 림프샘이 부어오른 아들을 데리고 의원을 찾아가던 날은 법성 장날이었다. 이슬에 처진 풀잎이 땅에 닿을락 말락 하던 새벽길로 나셨다. 사십 리 길을 걸어 나선 아버지는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셨다. 신작로에서 산길과 논밭 사잇길을 넘나들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걷다가 뛰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다가 차츰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미명의 산속 짚으로 씌워둔 초분에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해리면에서 출발하여 상하, 홍농면을 거치면서 새벽이슬에 젖은 검정 고무신은 빠각빠각 맹꽁이 소리를 냈다. 발이 시리다는 투정에 등을 내주시던 아버지는 신작로가 나타나면 내려놓고 업기를 반복했다.
아침밥 짓는 연돌 연기가 나던 의원 집에 도착했다. 따스한 큰 손으로 찬 손목을 잡은 의원은 연신 고개만 흔들어 댔다. 조제해 준 약봉지를 들고나오니 해가 떠올랐다. 홍농에서 법성으로 들어가던 경계였던 강나루는 다리 공사 중이었다. 강둑을 향하던 선친은 다리가 아프다는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리 공사가 무사하도록 가난한 처녀를 토관 속에 넣어 용왕에게 바쳤다는 내용이었다. 강둑에 다다르니 섶다리 아래 강물에서 죽은 처녀 귀신이 불쑥 올라올 것만 같았다. 누런 강물이 흐르던 섶다리, 아버지 등짝에서 누나에게 들은 심청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 건어 산등성이에 오르니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거대한 법성포구가 다가왔다. 동호항에서 소금 운반 중선 한두 척만 보던 때였다. 포구에는 중선보다 더 큰 어선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이 정박하여 있었다. 나는 항구 가득한 뱃줄에 펄럭이던 오색기를 세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끝없이 이어진 장터에는 조기와 장대, 장어, 박대 등 가게마다 생선이 가득하였다.
비릿한 냄새, 질퍽한 시장통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끼리 부딪쳤다. 항구에서도 찰랑거리던 파도 소리와 어선끼리 부대끼는 ‘삐걱’ 소리까지 들려왔다. 쪼그려 흥정하는 장꾼들로 붐볐다. 몇 시간을 걸어온 터라 재가 잔뜩 고팠다. 터미널 앞 국밥집 가마솥 끊는 물속에 잠긴 돼지머리는 천장을 향해서 웃고 있었다.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되를 주문하신 아버지는 허름한 구석 탁자에서 백색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고 마주 앉았다. 탁자에 펼쳐진 안주로 막걸리를 비우신 아버지는 풀치를 발라주셨다. 뚝배기에 내장과 순대를 수북하게 담은 국밥이 나왔다. 막걸리를 마신 아버지는 뚝배기를 내 앞으로 밀며 “어서 먹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순식간에 뚝배기 국밥 한 그릇은 깨끗하게 비웠다.
생기를 되찾아 난생처음 올라탄 버스 안은 장꾼들로 빈 좌석이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석 옆 엔진 뚜껑에 나를 앉혔다. 궁둥이로 전해지던 따끈함에 기분도 좋아졌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버스는 성냥곽처럼 사람과 짐으로 가득 채워졌다. 숨 막힐 듯 조여 오던 공간에는 장짐에서 풍기는 생선과 디젤 기름 냄새가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순댓국밥의 여운이 남아 있던 입 안이 하수구가 되었다. 되돌아 나온 토사물과 구역질 소리에 승객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엔진 뚜껑과 좌석 틈으로 흘러내리던 오물을 아버지는 두 손으로 쓸어 담아 퍼냈다. 출발이 지연된 버스 기사에게 아버지는 사과하였다. 기사가 내준 신문으로 바닥을 닦고 남은 물기 제거를 위해 신문을 깔았다.
약봉지를 들고 어쩔 줄 모르던 나에게 장군 한 사람이 좌석을 양보했다 아버지 품에 안겼으나 역한 냄새로 속이 계속 울렁거려 눈을 감았다. ‘토할 줄 알았으면 아버지나 드시게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창피스러운 그날 기억 때문에 순대국밥은 꺼린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해리 장터에 사시던 선배는 미식가다. 맛있는 장터국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불러내었다.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따라나선 시 외곽 순댓국밥집에서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났다. 법성포 장터에서 먹었던 대로 뚝배기에는 순대와 내장이 고봉으로 담겨져 나왔다. 살다 보면, 잊고 있었던 고통도 기쁨으로 변하는가 보다. 좋아하지 않았던 순대국밥도 별미로 느껴졌다. 나이 따라 입맛도 변하는가 보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작업복을 입은 남루한 사내의 뒷모습>에서 선친의 뒷모습을 보았다. 대를 이은 나의 뒷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