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남는 이름 / 달핑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하이쿠의 명인 마츠오 바쇼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여름밤 자욱하게 울려오는 개구리 소리가 그립지요?
이렇게 서울 한복판, 그것도 높은 빌딩 꼭대기에 낮아 멀리서 꼬리를 잇고 있는 자동차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느린 그림으로 보는 영화같이 세상 풍경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저 자동차들이 매연 대신, 빵빵거리는 소음 대신, 바쇼의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처럼 퐁당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개굴개굴 자욱한 여름밤의 소리를 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합니다. \ 수직으로 서 있지만 늘어뜨린 가지가 마치 몇 열 횡대로 서 있는 듯한 자귀나무에 어느새 빨갛고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재스민 향기보다는 가볍고, 라일락 향기보다는 더 싱그러운 자귀꽃 향기가 지금 이렇게 밀폐된 스튜디오 속으로도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은 아마 제 마음이 오래오래 자귀꽃 그 향기를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한 줄의 하이쿠처럼, 여름날 자귀꽃 싱그러운 향기처럼 가고 나서도 오래오래 향기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으로 살거나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으세요?
무상한 이 세상에 그 무엇으로 남은들 뭘 하겠습니까만 그러나 우리의 후각에 은은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향기는 반갑고 그리운 사람들의 다시 불러보고 싶은 이름 같기만 합니다.
글 출처 :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정목스님, 공감)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