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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나쁘지 않아! / 저녁에 당신에게

오작교 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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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겁이 덜컥 났습니다.

 

   불과 넉 달 사이에 친구는 이혼을 했고, 부모님을 차례로 떠나 보냈고, 재산의 많은 부분을 잃었고, 한쪽 눈의 시력까지 잃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을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드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당분간 친구를 자기 자신보다 더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주일간의 해외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죠. 다행히 저녁 무렵에 통화가 되었고 그는 퇴근하자마자 친구가 새로 이사했다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으니 더 나빠질 것은 없었지만, 전에 있던 집에 비하면 너무 좁고 어두운 방 안에 변변한 가구도 없이 혼자 남겨져 있는 친구를 보는 일은 마음 아팠습니다.

 

   작은 방을 가득 해우고 있는 건 음악뿐이었습니다. 한때 첼래스트가 되고 싶었다는 친구는 늘 첼로 연주곡을 열심히 들었죠.

 

   오늘도 친구는 첼로 연주곡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음악 들을 여유가 있어?"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친구가 미소를 보였지요.

 

이렇게 절실할 때 듣는 음악이

얼마나 사무치게 아름다운지 모르지?

너무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까

이제 더 뭐가 남았겠나 싶은 배짱도 생기고,

어지간한 일엔 흔들리지 않아 오히려 편해.

내 뜻과 상관없이 구석에 몰리긴 했지만

다 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 지금, 나쁘지 않아.

 

   순간 부러울 정도로 친구의 표정을 맑았씁니다.

 

   고통이 주는 선물이 있다면 저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죠.

 

   그러나 급격하게 겪은 상실감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거나 억지로 덮어버리면 나중에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친구 옆에 앉았습니다. 방이 너무 작아서 서글펐지만 작아서 아늑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자고 가야겠다.

친구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시멘트가 둗을 때까지

조금 더 친구 곁에 머물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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