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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의 바닥 / 나의 치유는 너다

오작교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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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대지의 빈 곳에 내려오지만
우물의 밑바닥은
기쁨으로 물을 보호한다.


   어디선가 읽고 메모해둔 시(詩)다.

   우물에 두레박은 던져본 지도 함으로 오래되었다.

   그 시절이야 다 그랬지만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도 우물이 있었다. 아침마다 두레박으로 걸어 올린 물로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기 전 어린 나는 늘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그 우물에 비치는 하늘과 내 얼굴을 보곤 했다. 줄에 달린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던져 넣으면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지던 하늘과 얼굴.

   그러나 요즘은 우물 보기가 힘들다. 우물이 사라지고 없는 시대다. 물이 없는 숲이 삭막하듯 우물이 없는 세상도 삭막하다.

   뜨거운 사막 사하라를 찾는 사람 중엔 더러 어린 왕자의 우물을 찾아 거기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로 불타는 붉은 모래는 햇빛을 받아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푸르게 비치고, 어린 왕자는 우물이 노래를 부른다고 속삭인다.

   “아저씨 들어봐. 우물을 깨웠더니 노래를 불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의 곳곳에 우물이 숨어 있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어린 왕자의 입술을 적시던 우물이 하나씩 숨어 있다. 세월이 가도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그 우물은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력 같은 욕망 때문에 모두 말라버렸다.

   좁고 깊은 우물은 찰랑대는 물이 있는 바닥까지 땅을 파고, 돌을 촘촘히 쌓아 올려 만든 서늘한 샘이다. 날씨가 푹푹 찌듯 더워도 우물의 물은 언제나 청량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우물엔 나무로 만든 뚜껑이 덮여 있었다. 이끼 낀 우물가엔 파란 하늘색을 닮은 나팔꽃이 피어나곤 했는데, 나팔이라는 그 이름 때문인지 세수하면서도 나는 늘 꽃이 혹시 음악 소리를 내는 건 아닌지 바라보곤 했다.

   높은 곳에 있는 구름같이 한 번도 세상의 높은 사람이 되어보진 못했지만, 시간은 삶의 목적지를 향해 바가 되어 나를 실어 갔다. 그 배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풍파를 만났다.

   우물의 밑바닥 같은 존재.

   그런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지탱된다. 언론에 나오는 선행만 해도 그렇다. 김밥 팔아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들의 선행담은 종중 목격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에 등장할 때 십중팔구 비리나 추문에 관련되었을 때다.

   마치 신선하고 말은 물을 보호하는 우물의 밑바닥처럼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유지되는 건 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덕이다. 그들이 낮다는 것은 그들이 신분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키는 말이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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