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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내 탓이었다 / 아버지의 뒷모습

오작교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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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살인자였다. 내가 죽인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불쌍하다거나 죄의식을 느낄 수 없었다. 방청석에서 소란스럽게 울부짖던 유족들도 가소롭게 보였다. 죽어야 할 사람을 죽였다는 우국지사처럼 재판정에서 최후 진술하였다. 구형하던 일본국의 검사까지 죽이겠다고 생각하면서, 분노의 눈길로 째려보았다. 이율배반적인 일본 지도자들을 어떻게 죽여야 완전범죄가 되는 걸까? 재판정에서 살인을 꿈꾸던 자신을 알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악몽에서 깨어나자마자 침대 맡에 핸드폰을 누르니 새벽 2시였따. 그동안 보고, 처리하였던 죽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변사체로 발견된 친고, 연탄가스로 실연한 애인에게 자살로 보복했던 처녀, 사건 현장에서 부검하던 시체들도 떠올랐다. 결혼식을 반대한 애인 가족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한 군대 후임도 있었다. 죽음으로 내몰았던 가해자, 억울한 삶을 마감한 가련한 영혼 모두를 위해 손을 모았다.

  악몽이었다. 나도 모르던 의식 속에 살인 유혹이 잠재의식인 꿈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아니, 오늘이 누구 제삿날이어서 꿈에 보인 것은 아닌지, 최근 접한 뉴스가 의식 속에 남아 꿈으로 나타난 것일까? 달력을 보니 광복절 연휴였다. 일본에 대한 저주는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현장과 닮았다던 소록도 해부실과 마루타의 의심이 된다는 윤동주 시인의 주검까지 떠올랐다. 뉴스로 보았던 후쿠시마 원자로와 해일, 원인도 모른 채 수장된 피해자들의 원혼이 나타난 꿈이었을까?

  북해도를 출발한 부산행 귀국선 우쿠시마호는 7천여 명의 조선인이 수장된 침몰 선박이다. 일본 서해 연안에서 일본 선원과 군인들만 피신 직후, 배는 폭발한 후 침몰했다고 한다. 탄광에 끌려갔다가 바닷속에 수장된 원혼들을 누가 달래야 할까? 세월호와 우쿠시마호 여객선을 건조한 나라는 일본이다. 수학여행에 들뜬 학생이나, 귀국선에 승선한 징용인 들의 웃던 모습이 아비규환으로 변하며 물속으로 사라지던 TV 영상은 잊을 수 없다.

  빅토리아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 선장은 세월호 크기의 화물선에 1만 4천 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거제도에 도착한 미국인이다. 우쿠시마호 정원의 6배, 세월호 승선 인원보다 30배나 많은 인원을 태우고 3일간의 항해로 배 안에서 출산한 아기까지 14,001명을 살려낸 영웅이었다. 5~6일 봉안 현장을 지켜본 그는 난민을 구출한 다음 봉쇄 수도원에 마리너스 수사로 종신서원 후 평생 기도 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광복 70년 세월에 분단의 원인과 책임을 져야 할 나라가 어디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3일 연휴 기간에 뒤숭숭한 꿈으로 뒤죽박죽 여러 사건이 떠올라 혼란스러운 아침이다. 2012년부터 진행하는 민사재판에 대한 잠재의식이 표출된 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신 심사위원장의 책무를 져야 하는 위치에서 내가 저지른 잘못 또한 내가 감내할 책임이었다. 지루하게 진행되는 민사재판 또한 내 탓이오, 내 탓이었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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