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있는 것들은 살려고 애씁니다. 그게 생명의 본성인 것입니다.
살려고 애쓰는 마음이 비난받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여 생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로 옮겨갑니다.
몸의 생명은 유한(有限)과 필멸(必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나고 죽음의 윤회를 벗어난 너머를 봐야겠지요.
달빛으로 생긴 마당의 그림자는 싸리비로 아무리 쓸어도 쓸리지 않고, 흐르는 물 속에 뜬 달은 물에 젖지 않습니다.
늙은 머머니 오셔서 하룻밤 주무십니다. 집 구석구석 쓸고 닦고 밑반찬거리 만드느라 분주하셨지요. 종일 움직임 몸이 고단한지 주무시면서 토도 고시고 알아들을 수 없느 잠꼬대도 하십니다.
어머니 오신날 배가 땅이 끌릴 듯 무거웠던 여름이가 해산을 했지요. 강아지 다섯 마리가 시끄럽습니다.
포졸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해산한 여름이의 집에 고개를 들이밀고 코를 킁킁거리며 살핍니다. 혹시 갓 태어난 강아지들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포졸이를 묶어놓았지요.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이십니다.
어둔 저녁 때 거실에 앉아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어머니가 "나 죽으면 화장할래?" 하십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지요. 다시 물으니 어머니가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나는 미처 늙은 어머니의 죽음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뿐더러 그보다 먼저, 산 어머니의 장례방식을 입에 올리느 게 불경스럽게 느껴졌던 탓이지요.
내가 대답이 없자 어머니가 "화장이 깨끗하지."라고 혼잣말을 하십니다.
창 밖에 누가 마른 가랑잎이라도 태우는지 저문 공기 속에 흩어져 섞이는 연기를 내다 봅니다. 그 혼잣말을 듣는데, 나는 공연히 분하고 화가 솟구칩니다. 늙은 어머니가 이젠 죽은 뒤를 생각하시나 봅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여름이의 미역국을 올려놓은 가스렌지를 켭니다. 여름이가 나와 따뜻한 미역국에 말은 밥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간밤 추위를 잘 견뎠는지 안쪽에 강아지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생명의 첫걸음을 떼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지요.
된서리가 내린 들이 온통 하얗습니다. 된서리를 홑이불로 끌어다 덮은 저 들의 바닥엔 풀씨를 떨구고 시들어 주저앉은 풀의 주검들로 장엄하겠지요. 축생에게나 사람에게나 나고 죽는 일은 그 자신에게는 커다란 사건이지만 우주 안에선 일상범백사의 하나입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 뿌리와 이파리)中에서
비가 / 노미선
추석날 성묘를 가는 차안에서, 어머니께서 말씀을 꺼내십니다.
"나중에 아버지나 나나 아파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면 산소마스크같은 것 씌우지 말아라"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늙으면 죽은 것이 당연한 것이지.. 살 가망도 없는데, 괜히 산소마스크같은 것을 씌워서 너희나 우리나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두어라,
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을 해 놓을 테니깐 그렇게 알고 있어. 언제라도 내 정신이 아닐까봐 걱정이 되어서 정신이 말짱할 때 해 놓은 소리이니깐....."
제가 퉁명스레 말을 받습니다.
"아니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럼 아픈 환자를 그냥 두고 보란 말입니까?"
"살 가망이 없는 사람을 괜히 고생스럽게 하지 말고 편하게 하자는 것이지. 갈 사람은 빨리 가야하는 것이 도리이지."
어머니께서는 '세브란스 병원'에선가의 존엄사 문제를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늙어서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야 세상의 어느 부모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하루종일 우울하고, 어머니의 '정신이 말짱할 때...'라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려서 화가 났었습니다.
위 필자의 마음이 읽혀지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