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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것은......

오작교 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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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것은 고요하게 저 혼자 두면 스스로 맑아집니다. 가만히 안주하는 것도 물과 햇빛을 받게 되면 땅에서 싹을 내며 발아합니다. 애써 빨리 혼탁한 것을 맑게 하고 애써 빨리 자라게 하는 것은 마음 그득한 탐욕입니다. 탐욕은 반드시 죽음으로 넘어갑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면 분별을 버려도 능히 고요함으로 맑아지고, 전통과 예법에 ;자유롭고 고요히 있으면서도 만물을 살리는 활법을 낼 수 있겠지요.


나는 아직 도에 이르지 못했으니 날이 흐렸다 맑아졌다 할 때마다 마음도 변덕스럽게 흐렸다 맑아졌다 하고, 나날이 새로운 것을 취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산 아래 엎드려 사는 백면서생입니다. 저 도시의 광란과 무절제의 무간지욕(無間地獄)을 거쳐 이제 시골로 내려와 물을 바라보며 뒤늦게 정신을 바로 잡은 탕자의 몰골로 삶을 부여잡고 있지요. 아직 계율과 간경(看經)이 몸에 익지 않은 이 탕자가 웬일인지 5월이 되면 한 번쯤 떠오렬보는 선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수행이 깊은 선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승려입니다.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러자 선사가 말했지요. "그렇다면 들고 온 것을 내려놓게나."
"예? 제 손엔 아무것도 들려 있는 게 없는데요."
"그래? 그럼 계속 들고 있게나."
그때 젊은 승려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는 잘 압니다. '낮음'을 제 속에 품고 기리며 살겠다는 백면서생이 안에는 아직도 많은 욕망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성공이라는 욕망.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 번듯한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 세상이 깜짜 놀랄 만한 책을 쓰려는 욕망. 욕망들이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짐승들이지요. 이 놈들은 사람의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저를 채워달라고 그르렁거리며 보챕니다.

 

이 도을 지키는 자는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무언가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게 욕심이지요. 선사는 내게도 들고 온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무거운 것들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나는 아직은 물벼룩보다 더 미욱하고 가엾은 억조창생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영부영 살아버리고 싶지는 않은 자지요. 그러니 저 선사의 한마디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고 가끔씩 새겨보는 것이지요.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글 : 뿌리와 이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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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글쓴이 2009.08.11. 14:17
마음 속으로는 '버리자'곤 하지만
오늘도 또 하나를 주워들고 번민을 할 것을 압니다.
왜 이렇게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작교 글쓴이 2009.08.13. 10:02
CCamu님.
학창시절에 은사님께서 말씀해주신 '기다림'이 생각납니다.

"길을 걷던 나그네가 목이 말라서 물을 찾았다. 그런데 그 옹달샘이
누군가에 의해 더럽혀져 있었다. 그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물음에,
저는 답합니다. "다른 옹달샘을 찾아 봐야지요."
"그곳에 다른 샘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더럽혀진 샘물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법이다. 조금만 곁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면'
달콤한 샘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조급함때문에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단다."

오늘도 반성을 해봅니다.
잠깐의 '기다림'을 소홀히 하여 더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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