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봄날은 간다

오작교 8762

1
새벽에 성북동 셋집에 혼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지요. 전화번호는 분명히 맞는데, 결번이라는 말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나중에 손전화가 연결되어 물었더니 늙은 어머니는 전화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끊었다 합니다. 자책이 날선 칼날이 되어 가슴을 베고 지나갑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어머니는 물었지요. "별일 없구요. 집에 한 번 다녀가시라구요."하고 손 전화를 끊었습니다.

 

백내장 수술을 세 번 받은 뒤로 아버지는 시력을 아주 잃었지요.
어머니는 눈 어두워 새 옷을 뒤집어 입는 늙은 아버지를 구박했습니다.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적십자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며 병원과 집을 오갔습니다. 결국 중환자실에 들어가시더니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먼 길을 가셨지요. 그게 이태 전 일입니다. 늙은 아버지를 구박하는 즐거움을 잃자 어머니도 갑자기 늙었습니다. 자주 무릎이 아프다고 어린애처럼 징징거립니다.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노래하는 걸 못 들었지요. 외가(外家) 사람들은 대개 음치고, 더구나 사는 게 고달파서 노래엔 취미가 없었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소년시절 들었던 어머니의 노래는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 한 곡 뿐입니다.

 

그 시절 삽십대의 어머니는 앳되었겠지요. 소년의 눈가가 젖었던 것은 어머니의 노래가 구슬펐기 때문입니다. 노랫말 속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던 것이지요. 칠순에 접어든 늙은 어머니는 뒤늦게 바람난 것처럼 퇴행성 관절염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새 노래 배우러 구청 노래교실에 나가십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글 : 뿌리와 이파리) 中에서..

공유
1
오작교 글쓴이 2009.08.11. 14:16
제 어머니는 노래를 잘 부르셨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어린시절에 들었던 노래들은 최정자의 모녀기타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그리곤 기억이 나지 않는 슬픈 곡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노래들을 들어 본지가 참 오래되었군요.
늘 이렇게 어머니를 가슴에서 밀어 낸 채로 살고 있는 불효자입니다.
댓글 등록
취소 댓글 등록

cmt alert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이 공간을 열면서...... 10 오작교 09.08.06.10:52 78069
22
normal
오작교 09.08.26.14:26 9747
21
normal
오작교 09.08.25.17:39 10237
20
normal
오작교 09.08.22.10:59 10136
19
normal
오작교 09.08.20.16:25 9786
18
normal
오작교 09.08.19.15:29 10097
17
normal
오작교 09.08.19.14:49 10939
16
normal
오작교 09.08.18.10:39 9770
15
normal
오작교 09.08.17.16:00 10153
14
normal
오작교 09.08.17.15:08 10058
13
normal
오작교 09.08.14.13:53 10255
12
normal
오작교 09.08.14.12:43 10237
11
normal
오작교 09.08.13.11:16 10209
10
normal
오작교 09.08.11.13:32 10328
9
normal
오작교 09.08.11.10:59 8598
8
normal
오작교 09.08.07.16:41 10363
7
normal
오작교 09.08.06.23:37 9306
normal
오작교 09.08.06.16:21 8762
5
normal
오작교 09.08.06.14:49 8891
4
normal
오작교 09.08.06.11:32 9034
3
normal
오작교 09.08.06.11:20 1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