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이 곧 깨달음
마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참 마음이요, 둘째는 거짓마음입니다.
거짓 마음은 할 줄 아는 게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시비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거짓 마음인 불별심은 인연 따라 느닷없이 생겼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까닭에 정해진 처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은 닦을 것이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닦을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허공을 닦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은 다만 쉬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분별심을 쉬어주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마음공부입니다. 그래서 ‘쉬는 것이 깨달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심을 쉬게 하면, 본마음이 자연스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파도가 쉬면 본래의 물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본래의 맑고 잔잔한 바다에는 온갖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춰져 있습니다. 파란 하늘은 파랗게, 하얀 구름은 하얗게, 둥근 것은 둥글게, 모난 것은 모나게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본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려서 섬진강을 바라보던 성품이나, 나이가 들어서 섬진강을 바라보는 성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몸은 쭈그러져 늙었을지언정, 섬진강을 바라보는 성품 그 자체는 결코 쭈그러들거나 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몸을 돌려 좌우를 돌아보십시오. 그럴 때 얼굴이나 눈은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보는 성품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종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종을 치면 그 소리가 생겨났다가 이윽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성품은 종소리와 함께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종소리는 생멸(生滅)이 있지만, 종소리를 듣는 성품에는 생멸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몸은 잠이 들어도 성품은 잠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꿈에서도 보고 듣고 다닐수 있는 것입니다.
- 하략(下略) -
글 출처 :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월호스님 : 마음의 숲)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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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것들을 원하면서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눈앞의 작은 것에 연연하여 더욱 더 큰 것을 잃지나 않은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되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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