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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겨울

오작교 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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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엔 시장 한 귀퉁이에 김장 시장이 서고, 배추며 무 그득히 사들여 동네잔치처럼 떠들썩하게 모여 김장을 마치고 나면, 회색빛으로 찌푸렸던 하늘에서 첫눈도 펄펄 내리곤 했지요.


갈치조림, 김장 양념들과 함께 버무려 무쳐낸 겉절이, 그리고 김장 담그고 남은 배추를 넣어 말갛게 끊인 된장국에 뜨거운 밥 말아 입천장 데지 않으려고 후후 불며 먹고 나면 이내 어두워졌지요.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을 다 끝내고도 늦도록 어둠 속에서 뒷정리 하느라고 밖에서 그릇들을 달그락거렸습니다.
1년 새 키가 훌쩍 자라 짧아진 내복 바지를 입은 나는 이불 속을 파고들어가 그 소리를 아련히 들으며 달콤한 잠에 빠져든 게 어제 같습니다.

군색스러움이야 어디 이
단칸방의 이불덩어리 하나뿐이랴
부뚜막에 걸려 있는 
백철솥뿐이랴

입동지나고 해가 짧으매
변두리 이곳에 겨울이 빨리 닥쳐오리니
아이들은 일 년 동안 키가 자라서
지난해의 바지 길이가 짧아져 있고

여름 동안 뛰놀다 다친 복상씨 뼈
그 시커먼 생채기를 가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디 가난이 그렇게 
초조하기만 하랴
굴다리 빈 공터에 어둠 드리우면
단칸방에 어느새 불이 켜지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야트막한 골목으로 피어나는 것을
어디 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랴

연탄광 한구석에 묻지도 못한 항아리 하나
달랑무우 한 접 김치도
이 겨울에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 김명수의 달랑무우 김치

겨울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달픈 계절이지요. ‘부뚜막’, ‘백철솥’, ‘단칸방’, ‘연탄광’......


젊은 사람들에겐 이런 정서는커녕 어휘조차 생경하겠지요. 예전에는 연탄 몇 백 장씩 사서 광에 가지런히 쌓아놓는 것은 부자들이나 누리는 호사였지요. 서민들은 추운 겨울날 그때그때 스무 장 삼십 장씩 들여놓곤 했지요.

 

지금이나 그때나 추운 겨울은 이상하게도 가난한 동네에 먼저 찾아오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연탄광 한 구석에 땅에 묻지도 못한 채 천덕꾸러기 같이 방치된 항아리 속에서 총각무는 발갛게 익어갔던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어디 가난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하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날은 문득 아버지 돌아가시고 멀리 홀로 계시는 어머니며, 외지에 나가 있는 아이들 얼굴도 떠올라 갑자기 목이 메기도 하지요. 목이 시려 목도리를 하고 시린 무릎 위에 담요를 덮고 책상 앞에 앉아 몇 자 적어 봅니다.

 

다들 안녕하시지요? 수졸재 주민이 멀리 있는 그대에게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을 기원합니다. 아니 겨울은 좀 추워야 하는 것인가요?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 뿌리와 이파리) 中에서..

 


배경음악 : Russian Gipsyswing / Lendv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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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글쓴이 2009.09.07. 18:36
오늘 저녁에 아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녀석들은 뭐라고 할까요?
연탄 두 장을 사서 구멍에 넣은 새끼를 붙잡고 언덕길을 뛰어 오르던
그날의 그 이야기들을 그들은 상상이나 할까요?

모든 것들이 풍요롭고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세상,
운동화 하나도 '메이커' 제품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아이들이......

삶이 어렵고 팍팍하기만 했던 그 시절,
그래도 사람의 냄새가 넘쳐나던 그 시절이 눈물이 겹도록 그리워집니다.
별빛사이 2009.09.08. 12:11
동생은 몰래 눈깔사탕
깨물어 먹다가 덜컥~~
아고 턱이야~~~~~!! *(*
지금 까지도 말 안했다욤
샘통이라 놀릴까봐 ㅋㅋㅋ
CCamu 2009.09.08. 13:32

겨울은 겨울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ㅎ

한공주 2009.09.08. 16:03
추운 겨울날엔 아침에 세수하고 문고리 잠아당기면
문고리에 손이 달라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엄청 추웠던 기억
이젠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그래두 그시절이 그립네요(제가 사는 동네는 양반들만 사는 충청도 예산이랍니다)
오작교 글쓴이 2009.09.08. 18:16
별빛사이님.
그 시절의 눈깔사탕은 어찌 그리도 단단했었는지요.
작은 구슬만한 눈깔사탕 하나를 돌위에 올려 놓고
돌멩이로 콩콩 때려서 조각을 내어 나누어 먹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말로 지금이 이 풍요를 다 버리고서라도 그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가슴이 메입니다.
오작교 글쓴이 2009.09.08. 18:17
CCamu님.
"겨울은 겨울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답게'사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정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 요즈음입니다.
아니 그 핑게를 대면서 '다람답지 못하게'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작교 글쓴이 2009.09.08. 18:20
맞습니다. 한공주님.
겨울에 세수를 한 후에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달라붙던
그 기억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있느네, 그렇게 추워본 경험은
요 근래에 들어서 없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못해서일까요?

충청도 예산의 양반고을에 사시는군요.
물론 한공주님은 공주이시니깐 '왕족'일테이고 말입니다. ㅎㅎ
조마루 2009.09.09. 20:31
오작교홈에서
마음의 샘터가 생긴후로 가끔 찾기는 했으나
다녀간 발자취을 남긴것은 아마 처음인 듯 싶습니다.

"어느 가난한 겨울"을 읽으면서 잠시 유년시절로 가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어린시절에 살던 저희 집은 뒤 뜰에 대나무숲과 감나무을 등지고 입구(口)로
남쪽을 보고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집은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본 채엔 부엌에 안방 그리고 음방과 갓방이 있었고
왼쪽에 대문이 있었고 우측엔 소을 기르는 외양칸과 돼지의 보금자리가 있었으며
전면에 사랑채가 별도로 있었습니다.

초겨을 저녁때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
저와 아버지는 소의 여물을 준비하기위해 저는 작두을 밟았으며 아버지는 볏집을
작두에 쉴새없이 넣었던 기역이 나는군요.

사랑채에서 소의 여물을 삶을라치면
소도 군침이 도는지 군불지피는 아버지을 보면서 연상 음매.....
당시 군불은 생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을 주로 땔감으로 사용했답니다.

덕분에 잠시 40년전으로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작교 글쓴이 2009.09.10. 08:12
조마루님.
눈을 감은 채 님이 설명하여 주신 모습들을 상상해봅니다.
그러한 것들은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지요.
회의준비로 분주한 아침시간이지만 잠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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