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어린 그를 한낱 어린 아이라가 아니라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을 참 짧았다. 그가 열세 살 때 아버지는 야속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중 기억나는 것은 불과 예닐곱 해쯤이 전부였다.
네댓 살쯤부터 한글과 한자를 가르쳐준 아버지는 어린 그를 데리고 당신 잘 들르시던 다방 순례를 다녔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였다. 다방에 가면 그가 자장 어린 손님이었고, 마담 아줌마나 레지(예전 다방에서는 서빙하는 아가씨들을 그렇게 불렀다) 누나들이 귀엽다면 과자를 주곤 했다. 테이블에 앉아 계신 어른들도 그를 어엿한 다방 손님으로 대해주셔서 그는 아버지와의 데이트가 항상 즐거웠다.
어린 꼬마였으니 커피는 마시지 못하고 그저 우유나 주스를 마셨다. 가끔 커피를 마시는 어린들이 부러워 자기도 달라고 아버지께 조르면, 빙그레 웃으시며 그저 색깔만 조금 드러난 만큼만 탄 커피에 연유를 듬뿍 넣어주시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그때 맛본 연유의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다방 순례는 부자간의 밀행과도 같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버지는 그를 앞세우고 한글과 한자로 된 간판들을 읽게 하시며 흐뭇하게 산책을 즐기셨던 것 같다. 때론 둑길을 함께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아마 어린 막내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았기에, 유독 그에게 정을 담뿍 덜어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정적인 성품의 아버지는 출장 가실 때마다 여섯 남매 가운데 한 사람을 꼭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시절에는 참 보기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가 출장 가실 때 가끔씩 따라가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정말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찾아가시는 곳이 대부분 깊은 산속이었기 때문이다.
국유림지를 관리하는 관청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따라간 곳들은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애당초 오를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험한 산길들이었다. 한쪽을 보면 그대로 낭떠러지인 아찔한 길도 많았다. 비포장도로였으니 엉덩이는 쉴 새 없이 들썩였고 머리는 이리저리 처박히기 일쑤였다.
더 끔찍한 건 산으로 깊이 가면 갈수록 그가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숲 가득 메운 나물들 사이로 빼꼼히 내민 하늘이 전부였다. 그래도 낮에는 볼거리라도 있으니 괜찮았지만, 밤이면 산짐승이 내려올 것 같은 무서움에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지체되어 산막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산막 앞에 작은 화톳불을 피워놓고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는 지금도 별자리 이름을 제법 알고 있는 편인데, 그건 모두 그때 산에서 아버지가 알려주셨던 것들을 어슴푸레 기억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마 일부러 미리 별자리 공부를 하셨던 것 같은데, 딱히 그것 말고 아들과 함께 나눌 게 없었으니 그랬던 것 같다. 이런저런 별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얼핏 동화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당시 어린 그로서는 조금은 지루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퐁소 도데의 《별》을 읽은 후에야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막내야, 별이 참 아름답지? 하지만 아버지에겐 너라는 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단다. 사랑한다.”
나이 쉰이 넘은 지금까지 그는 그날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당시만 해도 ‘사랑한다’는 말은 남세스러워 입 밖에 꺼내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에게 그 말이 얼마나 거대한 음성으로 들렸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우주 그 자체인 것처럼 다가왔고,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너무 쑥스러워 아버지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없이 산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그 따뜻한 말이 생생하게 마음속에 살아 있었기에 엇나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아마도 그를 버티게 한 힘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한다‘는 그때 그 말이 아니었나 싶다.
야속하게 그와의 시간을 그리도 짧게 마련하고 떠나신 아버지. 어린 그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주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셨던 아버지. 늘 따뜻하게 살아야 한다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아들에게 많은 걸 남겨주고 싶어서 그러셨는지 모르겠다.
그는 너무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난 아버지를 야속하게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당신이 너무나 많은 사랑과 따뜻함을 남겨주시고 떠난 까닭이다.
이 깊은 밤 도회의 하늘에는 그저 몇몇의 별들만 헛헛하게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버지의 별이 늘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 아버지는 별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쏟아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아버지. 별이 된 나의 아버지······.’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어린 그를 한낱 어린 아이라가 아니라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을 참 짧았다. 그가 열세 살 때 아버지는 야속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중 기억나는 것은 불과 예닐곱 해쯤이 전부였다.
네댓 살쯤부터 한글과 한자를 가르쳐준 아버지는 어린 그를 데리고 당신 잘 들르시던 다방 순례를 다녔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였다. 다방에 가면 그가 자장 어린 손님이었고, 마담 아줌마나 레지(예전 다방에서는 서빙하는 아가씨들을 그렇게 불렀다) 누나들이 귀엽다면 과자를 주곤 했다. 테이블에 앉아 계신 어른들도 그를 어엿한 다방 손님으로 대해주셔서 그는 아버지와의 데이트가 항상 즐거웠다.
어린 꼬마였으니 커피는 마시지 못하고 그저 우유나 주스를 마셨다. 가끔 커피를 마시는 어린들이 부러워 자기도 달라고 아버지께 조르면, 빙그레 웃으시며 그저 색깔만 조금 드러난 만큼만 탄 커피에 연유를 듬뿍 넣어주시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그때 맛본 연유의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다방 순례는 부자간의 밀행과도 같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버지는 그를 앞세우고 한글과 한자로 된 간판들을 읽게 하시며 흐뭇하게 산책을 즐기셨던 것 같다. 때론 둑길을 함께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아마 어린 막내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았기에, 유독 그에게 정을 담뿍 덜어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정적인 성품의 아버지는 출장 가실 때마다 여섯 남매 가운데 한 사람을 꼭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시절에는 참 보기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가 출장 가실 때 가끔씩 따라가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정말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찾아가시는 곳이 대부분 깊은 산속이었기 때문이다.
국유림지를 관리하는 관청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따라간 곳들은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애당초 오를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험한 산길들이었다. 한쪽을 보면 그대로 낭떠러지인 아찔한 길도 많았다. 비포장도로였으니 엉덩이는 쉴 새 없이 들썩였고 머리는 이리저리 처박히기 일쑤였다.
더 끔찍한 건 산으로 깊이 가면 갈수록 그가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숲 가득 메운 나물들 사이로 빼꼼히 내민 하늘이 전부였다. 그래도 낮에는 볼거리라도 있으니 괜찮았지만, 밤이면 산짐승이 내려올 것 같은 무서움에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지체되어 산막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산막 앞에 작은 화톳불을 피워놓고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는 지금도 별자리 이름을 제법 알고 있는 편인데, 그건 모두 그때 산에서 아버지가 알려주셨던 것들을 어슴푸레 기억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마 일부러 미리 별자리 공부를 하셨던 것 같은데, 딱히 그것 말고 아들과 함께 나눌 게 없었으니 그랬던 것 같다. 이런저런 별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얼핏 동화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당시 어린 그로서는 조금은 지루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퐁소 도데의 《별》을 읽은 후에야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막내야, 별이 참 아름답지? 하지만 아버지에겐 너라는 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단다. 사랑한다.”
나이 쉰이 넘은 지금까지 그는 그날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당시만 해도 ‘사랑한다’는 말은 남세스러워 입 밖에 꺼내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에게 그 말이 얼마나 거대한 음성으로 들렸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우주 그 자체인 것처럼 다가왔고,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너무 쑥스러워 아버지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없이 산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그 따뜻한 말이 생생하게 마음속에 살아 있었기에 엇나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아마도 그를 버티게 한 힘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한다‘는 그때 그 말이 아니었나 싶다.
야속하게 그와의 시간을 그리도 짧게 마련하고 떠나신 아버지. 어린 그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주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셨던 아버지. 늘 따뜻하게 살아야 한다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아들에게 많은 걸 남겨주고 싶어서 그러셨는지 모르겠다.
그는 너무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난 아버지를 야속하게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당신이 너무나 많은 사랑과 따뜻함을 남겨주시고 떠난 까닭이다.
이 깊은 밤 도회의 하늘에는 그저 몇몇의 별들만 헛헛하게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버지의 별이 늘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 아버지는 별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쏟아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아버지. 별이 된 나의 아버지······.’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