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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댄서의 순정

오작교 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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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얼마나 슬픈 봄이었는지 엄마들이 바닷가에서 넋을 놓고 울었지. 아침에도 울고 밤에도 울고. 울보 휘파람새는 아직까지도 우네. 엄마새는 눈물이 마를 날 없네. 나는 눈물샘이 말라붙어 요샌 실실 웃기까지 해. 어이없어서 웃는 거라 실없는 웃음. 아예 미쳐버렸나 춤까지 추네.

 

동무야 저기 꽃을 보렴. 꽃을 보면 마치 댄서 같아. 발레를 추는 소녀. 빼빼 말랐으나 탄탄한 외다리로 우뚝. 백조의 호수에서 춤추는 댄서여. 꽃들이 무리지어 피더니 봄바람에 춤바람까지 났나봐. 오줌소태가 난 아지매처럼 졸졸 새는 새암물. 어디가 고장이 났나봐. 얼른 틀어막아야 하는데 춤을 추느라 돌아볼 시간이 없어. 시골살이란 온통 일구덩이. 돼지감자 끌려나오듯 연방으로 터지는 일거리들.

 

11.jpg

 

일찍 일어나 소나무 정전을 하고 황토를 이겨 톱날에 난 상처를 발라주었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 잘게 썬 김치와 김가루를 섞어 그걸로 주먹밥.

 

스피커에선 ‘댄서의 순정’이 흘러나와. 꽃들이 댄서처럼 춤을 추고 있으니 딱 알맞은 노래겠네. “비 내리는 밤도 눈 내리는 밤도 춤추는 댄서의 순정….”

 

봄비가 먼저 내렸고 오늘은 봄눈 차례. 벚꽃이 날리면서 가슴 밑바닥까지 환장하겠더라. 봄눈이 쌓인 길목을 따라 걷다보면 당신 사시는 집이 저 멀리.

 

우리는 만날 때마다 춤을 춘다네. 쑥 캐다가도 춤을 추고, 마늘 뽑다가도 추고, 삽질 한 번에 춤 한 번. 삼보일배도 세상을 바꾸는 한판 춤이겠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지금 춤을 추고 있잖아요. 우리는 이 어두운 무도장에 같이 있는 거예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떠오르면 서로들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액운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꽃으로 춤으로. 후드득 핀 꽃들이 뻗은 손을 덥석 잡아보네. 옷도독놈(도깨비바늘)처럼 우리 몸에 달라붙었던 슬픔을 떠나보내려면 다 같이 손을 잡고 한바탕 댄서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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