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날이 온다 / 나의 치유는 너다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귀에 대어보면
바다 소리가 난다.
불길 속에 마른 솔방울을 넣으면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탄다.
타오르는 순간 사물은 제 살던 곳의 소리를 낸다.
헌옷 벗어 장작 위에 누울 때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
바다 소리가 난다.
불길 속에 마른 솔방울을 넣으면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탄다.
타오르는 순간 사물은 제 살던 곳의 소리를 낸다.
헌옷 벗어 장작 위에 누울 때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
인생은 때로 땅바닥에 금 긋듯 세월에 금을 긋는다. 그 금을 지우고 가는 사람도 있고, 넘고 가는 사람도 있다. 금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살거나 아예 금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이 좋은 건 아니지만 경험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것도 편견이다. 경험일 뿐 그것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 따라 다르다. 경직된 사람일수록 판단이 선명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선과 악이 금 긋듯 분명한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젊은 시절, 내가 그어놓은 금으로 이쪽과 저쪽을 분류하고, 내 편과 네 편을 분류했다.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일 뿐 중간이란 없었다. 편 가르기에 익숙한 내 안의 생각들에 반응해 몸은 움직였고, 적이 많아 언제나 긴장된 근육 때문에 나는 늘 날카롭게 보인다는 소릴 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표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각지고 있는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고집 센 사람의 표정이 고집 세게 보이듯 내 안의 생각들은 내 몸의 근육들에 영향을 미친다. 경직된 생각이 많은 사람의 표정은 웃어도 어딘가 딱딱하다. 반면에 생각이 부드러운 사람은 표정도 부드럽다.
우리의 생각이 그어놓은 금에 의해 선과 악은 나눠진다. 금의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놓고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쪽을 악이라 부르며 매도한다. 그러나 어제의 선이 오늘의 악이 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되는 장면을 우리는 인생이란 연극에서 너무 자주 만난다.
설령 금을 넘은 사랑을 했다 해도 언젠가 사랑할 수 없는 날이 온다. 언젠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 오며, 언젠가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는 시간이 온다. 머리로 그어놓은 금은 뭉개지고, 마침내 연극은 서서히 막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대사가 들려온다. 모은 게 무상하다는 대사도 들려온다. 그러한 그 대사들은 이미 인생이란 대본 속에 들어 있던 것이다.
파도에 밀려나온 소라 껍데기는 바다를 떠나도 귀만 대면 바다 소리를 낸다. 불길 속에 들어가도 솔방울은 가지에 매달려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겨져 바람소리를 낸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릴 때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서 있게 될까?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