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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던 최 모 씨라는 어느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한시바삐 피난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피난길에 오를 준비하던 중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은행에 갚아야 할 기일이 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에 갔다. 전쟁이 나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 챙겨서 떠나는 상황이었는데, 최 씨는 거꾸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이다.
“여기 빌린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최 씨는 돈이 든 가방을 열며 은행 직원을 불렀다. 은행 직원은 남자를 보고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융자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내려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게요?” 은행 직원의 말에 최 씨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다고 해서 그 돈을 은행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최 씨는 여러 생각 끝에 돈을 갚기로 하고, 은행 직원에게 빌린 돈을 갚을 테니 영수증에 돈을 받았다는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결국. 은행 직원은 채무자의 뜻에 따라 돈을 받고 자신의 인감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6·25전쟁 중 최 씨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을 가 군납 사업을 시작했다. 신선한 생선을 공급하는 일을 맡게 되어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그는 원양어선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나 담보물이 전혀 없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배를 사들일 수 없는 막막한 처지었다.
최 씨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큰맘 먹고 부산의 어느은행을 찾아가 사업자금 융자를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전쟁이 막 끝난 후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융자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융자받기를 포기하고 은행 문을 나서 한참을 가다가, 문득 자신이 전쟁 중 피난길에 서울에서 갚은 빚이 잘 정리되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을 돌려 예전에 은행에서 받아 보관하고 있던 영수증을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소상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영수증이 최 씨의 모든 상황을 바꿔 놓았다. 영수증을 본 은행 직원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바로 당신이군요. 피난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고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당신의 정직함은 은행가의 전설처럼 회자하고 있답니다.” 직원은 그를 은행장의 방으로 인도했고, 은행은 “당신처럼 진실하고 정직한 사업가를 만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필요한 금액을 흔쾌히 신용융자해 주었다.
최 씨는 융자받은 사업자금과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다. 정직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각, 말, 행동을 거짓 없이 바르게 표현하여 신뢰를 얻는 것이다. 정직의 성품으로 한국의 존경받는 경영자가 된 그가 바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설립자인 최태섭(崔泰涉·1910~1998) 회장이었다.
돈을 축적해 놓고도 세금을 포탈하는 자 남의 돈을 고의로 떼어먹는 자 기관을 속여 사기를 치는 등 불신이 만연된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것도 전쟁 중인데도 정직의 성품으로 신뢰를 얻은 그는 어려운 시기에 진솔한 성품을 밑천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국내 굴지의 기업을 키웠으며,
급기야 유리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본보기(龜鑑))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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