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좋은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

글 수 900

 

    전라도 가시내 / 詩 : 이 용 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1947년>
***********************************************************

  • [詩 감상: 정끝별·시인]
  •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
    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 (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댓글
2008.10.09 11:22:55 (*.2.17.115)
고운초롱
울 산들애님.

안뇽요?

조흔아침에~^^
전라도 가시내랑 향기조흔 차 한잔 어떼욤??
요거~↓~ㅎ

울 산들애님~!사랑해요~방긋

이따가 ...또 올게욤
댓글
2008.10.10 09:57:34 (*.202.139.91)
Ador
정말,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시대의 암울함과, 살려고 고향을 떠난 이들의 만남.....
그 애틋한 마음도 눈보라 벌판으로 내몰아야만 하였던.....
전율로 다가옵니다.

감상, 잘하였습니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번호
제목
글쓴이
100 희망을 노래하는 작별 1
산들애
2008-11-12 1691
99 짝사랑 1
산들애
2008-11-12 1666
98 ♣ 고엽(故葉) -詩 김설하 2
niyee
2008-11-11 1674
97 귀한 인연은 스스로 만든다 22
An
2008-11-10 2339
96 SK 이만수와 오바마 미대통령 당선자와의 인연 4
한일
2008-11-09 1807
95 지치지 않는 사랑(놓으면 자유(自由)요 집착함은 노예(奴隸)다...) 6
보름달
2008-11-08 1805
94 ♣ 안개비 내리는 가을 새벽 / 조용순 2
niyee
2008-11-07 1605
93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4
장길산
2008-11-07 1858
92 심장의 사랑 2
보름달
2008-11-06 2086
91 쉽게 잊혀질 사랑이 아닙니다 2
보름달
2008-11-05 1698
90 선택이란...... 19
오작교
2008-11-05 2266
89 ② 추자도를 다녀와서...... 3
발전
2008-11-04 1836
88 ① 추자도를 다녀와서..... 5
발전
2008-11-04 1943
87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6
보름달
2008-11-02 2030
86 ♣ 눈감아도 보이는 그대 -詩 김설하 3
niyee
2008-11-01 2135
85 사랑해서 이토록 아프다면... 13
장길산
2008-10-31 1969
84 인생에서 꼭 필요한 5가지 "끈" 4
야달남
2008-10-31 1914
83 2008년 시월의 마지막 밤에 9
달마
2008-10-31 1996
82 걸림돌과 디딤돌 6
윤상철
2008-10-30 1817
81 To you...이별이 가슴 아픈 까닭 2
보름달
2008-10-29 1950
80 죽을만큼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어 2
보름달
2008-10-28 2224
79 사랑의 7단계‏ 6
장길산
2008-10-26 1791
78 ♣ 가을 산책길에서 / 이재현 1
niyee
2008-10-26 1653
77 단 한사람을 사랑할수 있는 심장 2
보름달
2008-10-25 1980
76 울 허정님의 생일을 추카추카 해주세요^^ 7
고운초롱
2008-10-24 1941
75 가을과 함께 찾아온 그리움 하나 (인연) 2
보름달
2008-10-23 1852
74 가을비 내리는날 우산속은 쓸쓸.... 5
붕어빵
2008-10-23 1706
73 어느어머니의 이야기 1
윤상철
2008-10-22 1675
72 고운초롱님~ 축하합니다!! 21
장길산
2008-10-21 2055
71 ♣ 당신을 보내고 ~ 박만엽(낭송 한송이) 2
niyee
2008-10-21 1644
70 그리움의 간격 3
장길산
2008-10-20 1692
69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5
보름달
2008-10-19 2045
68 가슴에 담아 두고 싶은 글 6
보름달
2008-10-17 1879
67 幕(적막)/귀암 김정덕
산들애
2008-10-16 1626
66 이가을사랑하고싶습니다 1
산들애
2008-10-16 1634
65 가을의 기도 정창화 1
산들애
2008-10-16 1672
64 내 가슴 한쪽에 2
보름달
2008-10-14 1715
63 당신도 같은 생각이길 바랍니다 4
보름달
2008-10-13 1858
62 바람 저편에 서면..... 15
尹敏淑
2008-10-13 1934
61 유머(3)^^ 4
장길산
2008-10-12 1979
60 가슴에 소중함 하나 묻어두고 4
보름달
2008-10-11 1846
59 이광재 시 1
산들애
2008-10-11 1684
58 가을엽서,안도현 1
산들애
2008-10-11 2040
57 나그대를위하여 ,이채 1
산들애
2008-10-11 1692
56 가슴으로 하는 사랑 6
보름달
2008-10-10 1818
55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12
달마
2008-10-10 2170
54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4
장길산
2008-10-09 1817
[영상기획(39)]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2
산들애
2008-10-09 1663
52 12선 詩人의香氣 멀티포엠 전자시집 2
산들애
2008-10-09 1670
51 낚시는 내인생 3
발전
2008-10-08 1858
50 인연이 아닌줄 알면서도.... 4
보름달
2008-10-07 2235
49 ♣ 나뭇잎의 일생 / 박광호 4
niyee
2008-10-07 1926
48 나의 사랑 천년이 흘러도 4
보름달
2008-10-06 1923
47 이별이슬픈날 1
산들애
2008-10-05 1675
46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6
보름달
2008-10-04 1969
45 엄마친구 9
윤상철
2008-10-03 1862
44 October 기도 10
은하수
2008-10-02 1870
43 조금은 덜 슬픈 꽃으로 피지 그랬습니까. 5
보름달
2008-10-02 1940
42 초가을 맞은 진안 구봉산 5
장길산
2008-10-01 2623
41 ★2007 Spring Best MutiPoem 1
산들애
2008-10-01 1797
40 인생, 그것은 만남 4
달마
2008-10-01 2215
39 중년은 그리움의 시작이다. 4
보름달
2008-09-29 1969
38 가을 운동회 3
발전
2008-09-28 2059
37 여자와 어머니 4
보름달
2008-09-26 1938
36 자작나무이야기,양현주 2
산들애
2008-09-26 1891
35 서희 글: 아름다운 메세지3편 1
산들애
2008-09-26 1675
34 달빛ㅡ글;조흔파(노래;박인수) 8
은하수
2008-09-25 1933
33 당신과 나의 만남 11
장길산
2008-09-25 1965
32 가까운 사이일수록 ..... 7
별빛사이
2008-09-25 1934
31 텔레비젼에 제가 나왔시유~~~ 32
尹敏淑
2008-09-24 2434
30 아무나 잡는 다는 가을 감성돔이 왜 나한테는 이리도 안 잡혀주나..... 7
발전
2008-09-24 1959
29 아직까지, 돋보기 끼고 신문 보십니까? 8
윤상철
2008-09-22 1983
28 ♣ 가을타는 날의 그리움 / 詩 이재현 2
niyee
2008-09-22 1685
27 사람들은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5
보름달
2008-09-21 1917
26 행복한 바이러스^^** 4
화백
2008-09-21 1735
25 누구나 한 번은 목숨을 건 사랑을 꿈꾼다 2
보름달
2008-09-20 1929
24 인연 11
장길산
2008-09-19 1894
23 너에게만 줄게 2
산들애
2008-09-19 1681
22 좋은것은 비밀입니다 4
보름달
2008-09-18 1799
21 그리울 때가 더 아름다운사랑 1
산들애
2008-09-18 1825
20 9월이 오면/한지희 1
산들애
2008-09-18 1958
19 회원님들 추석은 잘 보내셨습니까? 3
발전
2008-09-17 1835
18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해도 좋을 이 2
보름달
2008-09-16 1917
17 돈이 말했답니다 - 5
보름달
2008-09-15 1875
16 부활절 날개 4
동행
2008-09-14 1871
15 따뜻한 마음으로 손잡아 주세요 2
장길산
2008-09-13 1717
14 가을에는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 1
야달남
2008-09-13 1716
13 아름다운 사랑으로 꽃피게 하소서...
보름달
2008-09-13 1632
12 입보다 귀를 상석에앉혀라, 혀에는 뼈가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라 6
보름달
2008-09-12 1824
11 20년 후에도 우린..... 6
발전
2008-09-11 2027
10 오! 밤이여/시현 8
동행
2008-09-11 1912
9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려므나 8
보름달
2008-09-11 1974
8 오늘 살아서 나누는 사랑 10
장길산
2008-09-10 2073
7 그대에게 띄우는 가을 편지.. 8
은하수
2008-09-10 1931
6 아름다운 시냇물 소리 9
보름달
2008-09-09 1893
5 개울의 思索 / 김준태 1
산들애
2008-09-08 1706
4 내 그리운 사람에게 (외2편) / 이재현
산들애
2008-09-08 1687
3 초롱이 마자주글각오루 왔으니깐...모~ㅎ 15
고운초롱
2008-09-08 1993
2 가장 아름다운 가위.바위.보
보름달
2008-09-08 1682
1 수백만 개의 거울 21
An
2008-09-07 2348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