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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게
2005.06.21 00:11:55 (*.87.197.17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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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기림


바다
너는 벙어리처럼 점잖기도 하다
소낙비가 당황히 구르고 지나갈 적에도
너는 놀라서 서두르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산처럼 큰 그들의 설움일랑
네 서랍속에 담아두려 하여
해만을 열고 바삐 나가더라
사람들은 너를 운명이라 부른다

너를 울고 욕하고 꾸짖는다
하나 너는 그러한 것들의 쓰레받기인 것처럼
한숨도 눈물도 욕설도 말없이 받아가지고 돌아서더라
너는 그처럼 슬픔에 익숙하냐?

바다
지금 너는 잠이 들었나 보다. 꿈을 꾸나 보다.
배에 힘을 주나 보다. 꿈틀거린다.
너는 자꾸만 하늘을 닮고자 애쓰나 보다.

그러나
네 마음은 아직 얼크러지지 않았다.굳지 않았다.
그러기에 달밤에는 숨이차서 헐떡인다.
시악시처럼 햇빛이 부끄러워 섬그늘에 숨는다.

바다
네 살결은 하늘을 닮았어도 하늘보다 푸르구나.
바위에 베이어 쪼개지는 네 살덩이는 그러나 희기가
눈이고나.
너는 옥같은 마음을 푸른 가죽에 쌌구나.

바다
너는 노래 듣기를 퍽이나 좋아 하더라.
기적만 울어도 너는 쭐기고 귀를 기울이더라.
너는 서투른 목청을 보고도 자꾸만 노래를 부르라
조르더라.

바다
너는 아무도 거둬본 이 없는 보료
때때로 바람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말고
밤이면 별들이 무너지나 어느새 아침 안개가 훔쳐
버린다.

바다
너는 언제나 나더러 친하다고 한 일이 없건만
온 아침에도 잠옷 채로 창으로 달려가서
넋없이 또 네 얼굴을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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