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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꿈/문정영

빈지게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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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꿈/문정영



내가 직립의 나무였을 때 꾸었던 꿈은

아름다운 마루가 되는 것이었다

널찍하게 드러눕거나 앉아있는 이들에게

내 몸 속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의 움직임을 헤아리며

슬픔과 기쁨을 그려 넣었던 것은

이야기에도 무늬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내 몸에 집 짓고 살던 벌레며, 그 벌레를 잡아먹고

새끼를 키우는 새들의 이야기들이

눅눅하지 않게 햇살에 감기기도 하고,

달빛에 둥글게 깎이면서 만든 무늬들

아이들은 턱을 괴고 듣거나

내 몸의 물결무늬를 따라 기어와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꿈속에서도 나는 편편한 마루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신비롭지 않을 때쯤, 나는 그저 먼지 잘 타고

매끄러운 나무의 속살이었을 뿐, 생각은 흐려져만 갔다

더 이상 무늬가 이야기로 남아 있지 않는 날

내 몸에 비치는 것은 윤기 나게 마루를 닦던 어머니,

어머니의 깊은 주름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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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2005.07.11. 09:26
나무가 넓직한 마루가 된뒤 독백인듯 한 얘기를
동화책 쓰듯이 잼나게 써 놓으셨군요.
영혼에 때가 묻지 않아야 이렇듯 순수한 글들을 쓸 수 있나봐요.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성격, 기호, 등등 여러가지가
대충 나타나 있더라구요.
빈지게님 덕분에 어린시절 시골 누구 집에나 있던 마루를 떠 올려 보았습니다.
마루를 닦던 기분으로 제 마음도 닦아 보아야겠네요.
우먼 2005.07.11. 09:33
오늘도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빈지게 글쓴이 2005.07.11. 13:30
꽃다지님!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는 매미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면서 시골집 마루에 누워서 낮잠을 자면 무지 시원했
었지요. 감사합니다.

슈퍼우먼님! 짧더라도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
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고맙습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 두분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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