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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내게/문병란

빈지게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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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내게/문병란


내 생의 고독한 정오에
세 번째의 절망을 만났을 때
나는 남몰래 바닷가에 갔다.

아무도 없는 겨울의 빈 바닷가
머리 풀고 흐느껴 우는
안타까운 파도의 울음소리
인간은 왜 비루하고 외로운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려야 하고
마침내 못 다 채운 가슴을 안고
우리는 왜 서로 헤어져야 하는가.

작은 몸뚱이 하나 감출 수 없는
어느 절벽 끝에 서면
인간은 외로운 고아,
바다는 모로 누워
잠들지 못하는 가슴을 안고 한밤내 운다.

너를 울린 곡절도, 사랑의 업보도
한데 섞어 눈물지으면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허허 몰아쳐 웃어버리는 바다

사랑은 고도에 깜박이는 등불로
조용히 흔들리다
조개 껍질 속에 고이는
한 줌 노을 같은 종언인가.

몸뚱이보다 무거운 절망을 안고
어느 절벽끝에 서면
내 가슴 벽에 몰아와
허옇게 부서져가는 파도소리...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직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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