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에 울다/나희덕
연두에 울다/나희덕
떨리는 손으로 풀죽은 김밥을
입 속에 쑤셔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 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도 어두운가.
나를 빛 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 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울을미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위한 최소 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시집 "2003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